창간 릴레이 기고 생각하는 나라6
상법 조항 하나만 바꾸면 가능
외자에 경영권 뺏길 염려 줄어
노동·기업·국가에 ‘일석삼조’
독일에선 이미 수십년전 시행
홍세화 선생이 가장자리란 이름의 학습 공동체를 만드셨다 한다. 내가 비슷한 뜻의 낱말을 처음 들은 것은 70년대 후반의 대학 시절이었다. 은사였던 박동환 선생이 늘 말했던 여변(餘邊)이란 개념을 풀어쓰면 가장자리였던 것이다. 남의 아픔보다 제 아픔이 먼저였고 세상에 대한 감사보다는 분노를 먼저 배운 나는 스승의 언어에 묻어 있는 피와 눈물을 느끼기엔 아직 어렸었다. 나중에 박동환 선생은 가장자리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존재 방식을 붙음살이라고 불렀는데, 글쎄 그 말의 처절한 뜻을 나는 지금 머물고 있는 제주에서 옛 월왕 구천이 쓸개 씹듯 곱씹고 있다.처음 와서 모슬포에서 송악산을 향해 들길을 걸을 때 너른 밭 한가운데 띄엄띄엄 정체불명의 콘크리트 조형물이 보여 무엇인가 물었더니, 일제 때 건설된 전투기 격납고라 한다. 그제야 나는 어렴풋이 이름만 들었던 알뜨르 비행장이 일제가 식민지 시절 여기 대정주민들을 동원해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일제는 이미 1920년대에 제주를 군사기지화하기 시작하여 30년대 중반에 비행장까지 완공하고 난 뒤에 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본격적으로 태평양 전쟁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왜 하필 제주였을까? 까닭을 물으니 당시 일본에서 출발한 전투기가 한 번에 중국을 폭격하고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여기 내렸다 다시 날아올라 중국의 도시들을 폭격하고 돌아왔다 한다. 그러니까 언필칭 이 평화의 섬이 태평양 전쟁 때는 실전에 배치된 항공모함이었던 셈이다. 대문도 도둑도 거지도 없는 평화로운 섬을 전쟁기지로 만들기 위해 일제가 광분할 때, 이곳 주민들이 바위산에 땅굴을 파고 들판에 활주로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이 길을 올레길 10코스로만 알고 있는 길손들은 알고 있을까?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