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문과가 낫냐 치킨대가 낫냐
얼마 전 인터넷에 한 고교생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12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5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8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등급에 울고 웃는 고등학생의 자조 섞인 글이라 수험생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막상 123등급으로 우수한 대학에 입학해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에게선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대기업 입사후 10년 정도 지나 명예퇴직을 하고 나니 작은 자본으론 할만한 일이 없어 결국 치킨집을 차려 '456등급처럼 치킨을 튀기고', 이문이 많지 않으니 '789등급처럼 배달도 한다'는 것이지요. 국내에 300~400개에 달한다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성업하는 이유가 꾸준히 만들어지는 명예퇴직자들의 신규유입 때문이란 이야기가 농담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다보니 프로그래밍업을 도전하려는 이들에게 선배 프로그래머가 트윗을 통해 한 충고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프로그래머로 먹고 살려는 사람이 있다면 조언 하나. 닭은 160~170도에서 15분 정도 튀기는 게 제일 적당합니다."
어차피 끝은 닭을 튀기는 일을 하게 될 테니 미리 배우라는 이야기겠죠. 그러다보니 풀기 어려운 이공계 문제는 치킨집 사장님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모든 연구소장들이 치킨집 사장님이 돼있다는 말이죠. 장장 158페이지에 달하는 '프로그래머는 치킨집을 차릴 수 있는가'라는 슬라이드가 남의 일처럼 다가오지 않습니다.
지난주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제목은 "서울대 문과가 낫냐 치킨대가 낫냐" 라는 것으로, 내용은 "어차피 다 닭집할 건데 치킨대학 일찍가는 게 낫지 않나요;;"라는 글이었습니다.(실제 치킨대학은 경기도 이천에 있습니다.)
직장생활에 지친 우리들이 친구들과 잡담하면서 쉽게 생각해내는 '사업거리'라는 것들은 대개 직관적으로 유용해 보이지만 진입 장벽이 낮아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입니다. 개인이 지금까지 조직에서 해온 일들을 확장하려는 경우엔 조직이란 시스템이 없어지면 혼자서 도저히 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큰 조직에 몸담는 순간 조직이 나의 평생을 보장해 주길 희망합니다. 하지만 조직은 '표준화'라는 미명아래 '순환보직'이란 수단으로 개인을 무장해제하고 있습니다. 조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높은 직위와 안위를 보장받는 것을 낙관하기엔 너무나 격정적이고 변화무쌍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기업의 순위 변화를 다시 한 번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오늘은 치킨에 맥주 한 잔 하시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