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적 해고' 82% 찬성한 KT 단협, 부정투표 의혹 제기돼"KT 선거개입, 사실상 공개투표"…KT노조 “음해…제보자 색출”
사측이 상시적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는 노사단협안에 대해 노동자들 82.1%가 찬성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는 실제 KT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다시 ‘부정투표’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KT노조는 지난 24일 조합원 82.1% 찬성으로 △임금동결 △고졸 정규직군 ‘세일즈직’ 신설 △면직제도 신설 △수당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단체교섭에 합의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면직제도’는 F등급을 연속 2회 받은 노동자에 대해 사측이 일방적으로 면직할 수 있도록 한 규정으로, KT민주동지회에서는 ‘상시적 정리해고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13 KT단체교섭’ 찬반투표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이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분명 우리는 새 용지에 투표했는데…”
KT노조 ㄱ조합원은 개표과정에서 발견된 오래된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봉인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ㄱ조합원은 “우리가 투표를 할 때에는 분명히 새 용지였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개표시 공개된 투표용지에는 몇 년 해묵은 찬반 투표용지가 들어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투표용지에 ‘2013년 KT단체교섭’ 등의 찬반 내용을 적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또한 이번 단체교섭 찬반 투표가 끝나고 봉인하지 않았다는 점과 참관인 없이 개표된 지역이 많다는 것도 논란 중 하나이다.
ㄴ조합원의 투표소에서는 찬성이 반대보다 3배 이상 나왔다. ㄴ조합원이 주변 사람들에게 찬반투표에 대해 물었을 때 ‘찬성 찍은 놈은 정신분석을 해야한다’는 등 반대를 찍었다는 동료들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결과가 정해져 있는 KT노조 투표’에 대해 ㄴ조합원은 분통을 터뜨렸다.
ㄷ조합원은 KT노조의 임단협 투표의 경우, 봉인을 안 하고 열쇠로만 잠가놓아 조작이 용의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KT 본사에서 찬성률 %까지 다 정해주면 노조와 선관위가 뚜껑을 열어서 맞추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KT본사에 직접 보고, 감독받아…"노조 선거에 사측 개입"
이번 ‘2013 KT단체교섭’ 찬반투표 과정에서 사측의 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사측이 노조활동에 개입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로 불법이다.
미디어스는 한 수도권지사의 팀장이 작성해 본사에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2013년 단체교섭 가협정(안) 투표결과 보고’ 문서를 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지사장이나 팀장들, 지부장은 (조합원들의)개별접촉을 통해 최선을 다했다”, “선거 당일 ㄹ조합원이 투표장을 수시로 오가면서 감시를 하였으며, 6시가 임박하여서 마지막으로 투표를 하고 개표시 참관을 했다”고 쓰여 있다. 이어 “이와 같은 사유로 부진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지역 투표의 찬성률은 57.1%에 그쳤다. 전체 평균 82.1%에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 문건에 언급된 ㄹ조합원은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내용을 보면 투표 찬성률이 부진하게 나온 것 대해 해명하고 있다”면서 “이사장과 팀장이 개별직원을 접촉해 활동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것은 노조 선거에 사측이 개입했다는 불법행위를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ㄹ조합원은 “전국에 300~400여개의 지부가 있고 600여 개의 투표소를 운영된다”며 “6명이 하는 투표소도 있다. 사실상 공개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투표가 끝나면 참관인 없이 개표를 하는 곳이 많다보니 임의로 조작을 해도 적발이 안 되는 상황이다. 또, 찬성률이 낮으면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다 보니 지사별로 찬성률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지목된 최 아무개 팀장은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문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부인했다.
“사실상 공개 투표” VS “제보자 조사…법적 책임 물을 것”
‘2013 KT단체교섭’ 찬반투표에 대한 부정의혹에 대해 KT민주동지회 측은 “그동안 사실상 공개투표가 진행돼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KT노조는 “음해성 언론플레이”라며 “제보자를 조사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KT민주동지회 한 회원은 “KT노조 투표과정에서 한 번도 민의가 반영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번에도 논란이 된 것이 투표용지에 찬반을 묻는 제목을 쓰지 않다보니 문제가 된 것이다. 봉인도 하지 않고 참관인 없이 개봉하는 등의 허술한 투표 관리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KT민주동지회는 이 밖에도 KT노조의 투표가 사실상 공개투표에 가까운 형식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회원은 “이번 투표 당에도 ‘몇 % 찬성으로 맞춰라’라는 이야기가 돌았다”며 “투표 때마다 항상 많은 제보들이 들어온다. 하지만 (사측의 불이익으로부터)그 조합원들을 보호해야하니 공개적으로 세울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2013 KT단체교섭’에 대해서도 “KT 직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실질적으로 임금이 안 오르는 것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면직제도 도입이 가장 큰 문제”라며 “팀장의 ‘너 F등급 맞을래?’라는 말에 직원들은 숨죽여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반면, KT단일노조 최장복 조직실장은 ‘투표용지’ 바꿔치기 의혹에 대해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부장을 문책하는 게 맞다”며 “그런 일을 목격했다면 노조 중앙이나 노동청에 신고를 해야지, 왜 언론에 공개를 하냐. 음해성 KT노조에 대한 흠집 내기”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최 조직실장은 ‘봉인을 하지 않았다’는 제보에 대해서도 “선관위도 있고 참관인도 있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투표가 끝나면 당연히 봉인을 해야 한다. 사실관계를 확인해볼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장복 조직실장은 ‘2013년 단체교섭 가협정(안) 투표결과 보고’ 문서에 대해서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할 것”이라며 “저희도 그쪽 직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그 직원은 죽어도 ‘그런 것을 보낸 적이 없다’고 해서 해킹 가능성을 열어둔 사이버수사 의뢰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장복 조직실장은 “이번 건(부정투표의혹)은 노조의 생명이 달린 문제로 그냥 있을 수 없다”며 “제보한 사람에 대해서도 진상조사해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