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지 못하는 민영 KT
고깃집을 운영해 부자가 된 고부가 서양식 음식점에 등장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왜 늦었냐"고 다그친다. 며느리는 "버스 대신 지하철 타고 오느라 늦었다"고 변명을 한다. 시어머니는 다시 "기사 딸린 차도 줬는데 왜 지하철을 탔느냐"고 몰아세운다. 며느리는 "죄송해요. 몸이 환승을 기억해요. 몸이 고생을 기억해요"라고 말한다. 시어머니는 "이제 좀 누려∼"라고 말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누려'의 한 장면이다. 이 코너를 보면서 100% 민간기업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기업' KT가 떠올랐다.
KT는 지난 2002년 공기업에서 민영화됐다. 정부의 지분은 1%도 없다. 외견상 완전한 민간기업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는 지난 10여년 '주인 없는 기업'의 행태를 보여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 최고경영자(CEO)는 불명예스럽게 교체됐다.
지난 2002년 민영 원년 KT CEO는 이용경 사장이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남중수 사장이 KT CEO에 올랐다. 깜짝 등용에 '뒷말'이 무성했다. 시작이 그래서일까. 남 사장은 2008년 비리 혐의로 불명예 퇴진했다. 정권교체 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CEO 퇴진을 거부한 결과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후, 고위 관료출신인 이석채 회장이 MB정권 출범과 맞물려 제3기 민영 KT의 수장으로 낙점됐다. 이 회장은 정관까지 개정하는 무리수를 뒤서 뒷말이 무성했다. 이 회장의 말로도 어김없이 정권교체와 함께 찾아왔다. 이 회장은 갑작스러운 검찰수사 여파로 지난 12일 불명예 퇴진했다.
'막장 드라마'처럼 KT CEO가 부침을 거듭하는 동안 민영 KT호는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위기에 몰렸다. 민영화를 통한 글로벌 통신기업 도약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 이후 경영실적이 호전되지 못하고 있다. 유선통신 시장의 역성장을 비롯해 무선가입자의 이탈, 롱텀에볼루션(LTE) 사업의 표류 등은 KT를 어렵게 하고 있다. 해외사업도 지지부진하다.
KT가 KTF를 인수합병하는 궁여지책도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소방수로 영입한 외부 영입 임원들도 누리는 혜택과는 달리, 위기를 해소하지 못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KT는 고배당을 지속하고 있다. 이석채 회장이 들어와서 94.2%까지 배당률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경영위기의 희생양은 KT 직원들이 됐다. 지난 1993년 6만8000명이 넘던 KT 직원 수는 2008년 3만5000명으로 줄었다. 그후, 지난해 기준 3만20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낙하산'식 외부 임원 영입은 오히려 늘었다. 이석채 회장의 경우 사퇴하는 순간까지도 20% 직원 감원 의지를 밝혀 직원들을 분노하게 했다.
KT 직원들은 '무늬만 민영화 10년'에 지쳤다. 반복되는 CEO의 외부 힘에 의한 선임과 불명예 퇴진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3만2000명 직원이 성과를 누리고 흥이 나도록 이끄는 리더십이 있어야 KT가 다시 산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CEO 선임이 '제4기 민영 KT'의 희망이자 출발점이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정보미디어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