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CEO추천委, 후보4명 선임기준 모호…"함량미달에 낙하산 인사"논란
케이티(030200) (30,700원▲ 50 0.16%)(KT)의 차기 회장 후보가 4명으로 압축됐다. KT내부는 물론 통신업계 안팎에선 CEO추천위원회가 뽑은 후보 4명을 두고 말들이 많다. KT는 어느 때보다 경영 능력은 물론 무선통신 분야의 전문 지식을 두루 갖춘 수장이 필요하지만 후보 4명 모두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통신회사를 경영할 적임자로서 요건이 부족하다는 평가부터 또 다시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후보는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는가 하면 공개 지지선언을 한 친(親)정부 인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 ▲ 차기 KT 최고경영자(CEO) 후보에 오른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과 권오철 SK하이닉스 고문, 김동수 법무법인 광장 고문, 임주환 고려대 교수(왼쪽부터). /조선DB
◆ 황창규·권오철 “유·무선통신 서비스 지식·사업경험은 전무”
KT CEO 추천위는 16일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선발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과 권오철 SK하이닉스 고문, 김동수 법무법인 광장 고문, 임주환 고려대 세종캠퍼스 교수을 상대로 면접을 실시하고 최종 후보자 1인 선발한다. 최종 후보 1인은 위원장을 제외한 재적 위원 과반수 이상이 찬성표를 얻으면 내년 1월 주주총회를 거쳐 곧바로 KT의 CEO로 취임하게 된다.
KT 한 관계자는 “CEO 추천위의 이번 결정에 대단히 실망스럽고 개혁과 혁신은 커녕 또 다시 함량 미달에 낙하산 인사를 KT에 끼워넣으려 하고 있다”며 “KT가 퇴직한 관료나 임원이 오는 자리도 오르고 그들이 가입자당 평균 수익(ARPU)이라는 업계 용어를 알고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4명으로 압축된 후보 가운데 황창규 전 사장과 권오철 고문은 반도체 업계에서 손꼽히는 경영인이지만 이들의 이력에는 유·무선통신 서비스 사업과 관련된 지식과 경험은 전무하다. 반도체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린 점은 인정하지만 복잡한 통신시장 상황을 돌파해 나가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황 사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이던 2002년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 기조 연설에서 메모리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Hwang’s Law)’을 발표했고 이후 이 법칙은 반도체 산업 성장을 설명하던 ‘무어의 법칙’을 압도하며, 업계의 정설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황 전 사장은 20년 넘게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면서 ‘사업’ 영역보다는 ‘개발’쪽에 더 가까운 경력을 쌓았다. 주력 분야도 역시 모바일칩 분야가 아닌 PC용 반도체 사업을 이끌었다.
황 전 사장이 차기 KT CEO로 선임될 경우 통신사인 KT가 제조사인 삼성전자에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출신의 황 사장이 최근 단말기 유통 개선법 같이 삼성전자는 반대하고 통신사가 찬성하는 대립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며 “KT가 삼성전자와 별도로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지 의문이며, 자칫 경영전반을 삼성전자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권 고문 역시 반도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고 경영인으로 자질이 충분하지만 제조업과 다른 통신시장에 대한 통찰력 측면에서 맞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실제로 권 고문은 1984년 현대그룹에 입사한 이후 2001년부터 하이닉스 전략기획실장과 대외협력실장 등을 역임하는 등 29년간 현대에서 근무한 정통 ‘현대맨’이다. 반도체 시장의 장기불황과 채권단 체제 아래서도 하이닉스를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기존 기업간 거래(B2B) 중심의 사업을 펼치던 권 고문이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가 사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KT를 잘 이끌지 의문이 제기된다.
◆ 朴대통령 대선캠프 참여·공개 지지선언 인사
이번 차기 KT CEO 후보 선정 과정도 ‘낙하산 인사’논란을 비켜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선캠프에 참여하거나 지지선언한 인물이 후보군으로 낙점됐기 때문이다. 앞서 사퇴한 이석채 회장도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낙하산 인사로 재임기간 내내 논란에 시끄러웠다.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두 후보 가운데 한 명을 KT수장으로 이미 결정해 뒀다는 낙점설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김동수 전 정보통신부 차관은 지방대 출신에서 차관까지 오른 신화적인 인물로, 지난해 12월 대선 당시 전직 공무원과 기업인 1500명과 함께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다.
김 차관은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정통부(당시 체신부)에 근무하면서 강직한 성품과 남다른 리더십으로 2004년 정통부 직원들이 뽑은 최고 국장에 선발되기도 했지만 무선통신 분야의 경영자로서의 능력은 한번도 검증된 바 없다. 2002년 KT 민영화 사업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통신업무과장, 정보통신진흥국 국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실무 경험보다는 총무과장, 감사관, 정책홍보실장 등 행정 부문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시선도 있다.
이상훈 전 KT 사장을 포함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뽑힌 임주환 교수 도 의외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낙점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임 교수는 정부가 국가운영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를 기반한 창조경제’를 이끌고 있는 친정부 인사로 유명하다. 임 교수 역시 지난 대선때 박근혜 대통령 선거 캠프에도 참여해 외부 자문역할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KT와는 2000년 초반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지난달 사퇴한 이석채 회장과는 경복고 동문이다. 올해 7월에는 전국 ICT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창조경제를 위한 스마트 뉴딜 실천 연합’ 을 만드는 등 외곽조직 활동이 여전히 활발하다.
이에 대해 KT 한 관계자는 “어떤 기준에서 면접 대상자를 선발했는지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CEO 추천위의 명백한 밀실 인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후보 4명이 전문 지식과 경험을 평가할 요소가 없어 낙하산 인사가 분명하다”며 “잘못된 인사로 인한 혼란은 CEO추천위원회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EO추천위원회는 이현락 세종대 석좌교수를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김응한 변호사,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성극제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송도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이춘호 EBS 이사장, 차상균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등 사외이사 전원, 사내이사인 김일영 코퍼레이트 센터장(사장) 등 8명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