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모 드러난 KT ENS발(發) 2조원 대출사기사건 ‘충격’
[심층취재] 한국스마트산업협회 조직적 연루…정치권 배경 주목
사법당국은 사기대출을 주도한 KT ENS 협력업체 대표 서모(46)씨를 비롯, 지금까지 3명의 협력업체 대표와 KT ENS 간부급 직원을 구속기소 했으며, 나머지 공범들도 신병을 확보해 조사 중이다. 핵심용의자로 꼽히는 엔에스쏘울 대표 전모(48)씨는 현재 뉴질랜드로 도피해 인터폴에 적색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다. 이들이 사기 대출받은 총액은 1조8000억원에 이르며 아직 상환되지 않은 돈은 2900억원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 돈의 대부분을 전씨가 챙겨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대출 사건에 연루된 KT ENS 협력업체들 대부분은 한국스마트산업협회에 가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이 사기대출이 진행될 당시에 한국스마트산업협회 명예회장을 맡았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편집자주> 전체 자금 2조원 육박…수천억원 행방 ‘묘연’ 이번 사건은 KT의 네트워크 엔지니어링 분야 전문 자회사인 KT ENS의 김모 부장(52)이 지난 수년간 협력업체들과 짜고 세금계산서 등을 조작해 허위 매출채권을 발행한 뒤, 협력업체가 이 매출채권을 담보로 시중 은행들로부터 수조원대에 이르는 부당대출을 받아오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적발되면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주범은 김 부장을 비롯, 전씨와 중앙티앤씨 대표 서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은 전씨와 서씨 등 업자들로부터 휴대전화단말기를 납품받은 사실이 있는 것처럼 매출채권을 위조 발행했다. 전씨 등은 이 채권을 특수목적법인(SPC)에 양도했으며, SPC는 이렇게 위조된 채권을 은행에 맡기고 거액을 대출 받았다. 이 과정에서 SPC는 채권 공증, 지급보증보험 등을 활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가짜채권’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정교한 세탁절차를 거친 것. 수사당국은 이번 사기대출에 이용된 특수목적법인 ‘세븐스타’가 범행을 위해 세워진 유령회사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같은 수법으로 2008년 5월∼2014년 1월까지 하나은행 등 금융사 16곳을 상대로 463회에 걸쳐 모두 1조8335억여원을 대출받았다. 대출받은 돈 중 일부는 ‘돌려막기’ 형태로 갚았지만 약 2900억원이 아직 상환되지 않은 상태다. 의문투성이 ‘한국스마트산업협회’ 금융범죄 소굴? 서씨는 자신이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한국스마트산업협회를 사기대출에 적극 이용해 왔다. 이 협회는 2011년 8월 스마트폰 액세서리 용품 산업발전과 정책 개선을 목표로 창립됐다. 협회에는 스마트폰 액세서리 제조·유통 중소기업과 KT를 비롯한 통신사와 제조사 등 관련 업체들이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중앙티앤씨 대표인 서씨는 협회장을 맡으며 이번 사기 대출 사건에 연루된 엔에스쏘울, 컬트모바일, 아이지일렉콤 등을 배후에서 조종해 왔다는 협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지분 관계나 임원 구성 등을 살펴보면 사실상 중앙티앤씨가 나머지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협회 임원사로 등록돼 있으며, 이 중 엔에스쏘울은 대출사기와 관련된 SPC의 신탁 기업이다. 이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유동화담보대출(ABL)을 받기 위한 SPC를 공동 설립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협회는 자금력과 정치권 배경을 가진 서씨에 의해 좌우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씨는 협회장을 맡으면서 임원진을 자신과 밀접한 업체 대표로 모두 바꾸는 등 세를 키워왔다. 또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협회의 명예회장으로 선임했고, 미래창조과학부·관세청·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기관과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금융권이 영세업체인 이들에게 한번에 수십~수백억원씩 돈을 빌려준 것에는 KT 협력업체라는 점 외에도 서씨의 이같은 정치권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윤 차관은 협회의 1대 명예회장을 지내다가 차관으로 임명되기 전인 지난해 4월 물러났다. 윤 차관이 KT 부사장 출신인데다 이 협회의 명예회장을 지낸 이력 때문에 검찰 수사 범위에 포함될 지 관심사다. 이에 대해 윤 차관은 “과거 대학교수 시절 해당 협회의 요청으로 명예회장을 수락한 적은 있지만, 협회와 관련된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차관은 언론보도를 통해 “연세대학교 미래융합기술연구소 연구교수로 있을 때 스마트산업협회 측에서 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고, 이후 명예회장이라도 해달라고 해서 수락했다”며 “협회가 융합산업 발전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 수락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주범 전씨, 수천억원 어디로 빼돌렸나? 또다른 주범인 엔에스쏘울 대표 전씨는 김 부장을 접대하고 금융권을 상대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금융전문가로 알려진 전씨는 은행권에서 ‘마당발’로 통했다. 그는 금융권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여신시스템의 허점을 노려 대출사기 사건을 설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회수하지 못한 2000억원 규모의 대출자금이 전씨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서씨 등이 사건이 드러난 후에도 정상적으로 출근하며 국내에 머무른데 반해 전씨는 사건이 터지기 직전 홍콩으로 도피했다. 현재는 뉴질랜드로 다시 출국해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다. 또 전씨가 직원과 지인들에게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사주고,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벤츠 등 고급외제차를 선물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초호화 생활을 즐겨왔다는 점에서 이미 상당 자금이 증발했을 수도 있다. 서씨, 전씨 등과 거래를 해오던 KT ENS 김 부장은 이들이 사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매출채권 등 서류를 위조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위조한 서류는 휴대전화 구매발주서, 물품납품확인서, 물품인수확인서, 세금계산서, KT ENS 명의의 매출채권 양도승낙서 등 대출에 필요한 제반 서류들이었다. 또 김 부장은 금융권 대출팀으로부터 문의가 올 때마다 관련 사실을 확인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공모했다. 특히 김 부장은 직원들이 자리를 비우는 점심시간대를 이용해 몰래 법인 인감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출 서류에 실제 인감을 사용함으로써 금융권의 의심을 피해갔다. 김 부장은 이 대가로 엔에스쏘울 명의의 법인카드를 받아 6221만원 상당을 결제해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부장은 2007∼2008년에도 전씨로부터 10차례에 걸쳐 1억2280만원을 송금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조기룡 부장검사)는 앞서 서씨를 구속한데 이어 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김 부장과 아이지일렉콤 대표 오모(41)씨, 컬트모바일 대표 김모(42)씨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해외로 도피한 전씨는 인터폴에 적색수배됐다. 오씨는 전씨 등과 9개 은행에서 251회에 걸친 1조1248억원 대출 건에, 김씨는 8개 은행에서 129차례에 걸친 2322억원의 대출 건에 각각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출금 회수 법정공방 치열 한편 은행에 지급보증을 선 증권사들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는 하나은행에 ‘KT ENS 협력사들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이를 대신 갚겠다’는 지급보증을 섰다. 이에 따라 하나은행은 지난달 24일 이들 증권사에 보증채무를 이행하라고 통보했다. KT ENS에도 대출서류를 허위로 발급해준 책임을 물어 기한이익상실(만기 전 대출금 회수)을 알렸다. KT 관계자는 CNB와의 통화에서 “(KT ENS 간부인) 김 부장이 대출서류를 위조한 것은 맞지만, 위조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은행 쪽에도 일부 책임이 있는 만큼,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과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KT ENS 간부가 연루된 명백한 대출사기 사건이므로 KT측과 지급보증사들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