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올해 초 황창규 회장 부임 이후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삼성맨’들이 잇따라 계열사 CEO 등 주요 요직에 영입돼 시선을 모으고 있다.
특히 최대 계열사인 비씨카드 사장에 삼성 출신 서준희 사장이 최근 선임돼 노조가 긴장하고 있다. ‘삼성 DNA’의 이식을 통한 경영쇄신이라는 기대와 계열사 인력감축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동을 걸었다는 우려가 엇갈린다. (CNB=도기천 기자)
삼성맨 영입·비서실 확대…‘KT삼성화’ 속도 KT 최대계열사 BC카드, 불똥 튈라 ‘긴장’ 비(非)노조 원칙론 vs 강성 노조 ‘폭풍전야’
‘KT의 삼성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주요 자리를 삼성 출신으로 채우는 ‘인적 쇄신’과 비서실 확대를 통한 삼성식 ‘관리통제시스템 강화’다.
KT는 지난 2월 김인회 전 삼성전자 상무를 그룹 재무실장 자리에 앉힌 데 이어 부동산 개발 계열사인 KT에스테이트 사장으로 최일성 전 삼성물산 상무를 임명했다. KT렌탈에도 최근 삼성 출신 인사가 임원급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맨들의 깜짝 영입 때마다 황창규 회장은 “인사는 오로지 전문성 여부만 본다. 수백 명을 인터뷰해 뽑았고 제가 아는 사람은 없다”며 손사레를 쳤지만, 애초 공모직으로 알려졌던 자리에 줄줄이 삼성 출신들이 채워지면서 구설수를 낳고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지난 3월 핵심계열사인 비씨카드 대표에 선임된 서준희(61) 사장이다. 삼성에서 잔뼈가 굵은 서 사장은 2004년 삼성생명 법인BU장 전무, 2006년 삼성증권 PB사업본부장 부사장, 2009년 에스원 대표이사를 거쳐 최근에는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을 지냈다. 서 사장은 경남고 출신으로 같은 해 부산고를 졸업한 황 회장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2011년 KT 계열사로 편입된 비씨카드는 금융부문 핵심계열사로 자리잡은 상태다. KT의 본업인 IT·통신 부문 다음으로 매출규모가 크다. 비씨카드는 매년 3조원대의 영업수익(매출)을 올리며 카드업계 ‘빅5’ 자리를 굳히고 있다.
비서실 ‘삼성스타일’ 왜?
‘KT의 삼성화’는 삼성 출신으로의 인력 교체에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그룹 비서실을 ‘삼성 스타일’로 대폭 강화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KT는 지난 2월 비서실을 비서팀 5명, 전략담당 10명, 재무담당 8명, 그룹담당 7명, 그룹홍보 CFT 4명 등 35명 안팎으로 크게 확대했다. 전무 2명, 상무 1명, 상무보 2명 등 팀장을 임원급으로 높였다. 대부분 팀원은 부장, 차장급으로 채운 것으로 전해진다.
전임 이석채 회장 당시 비서실은 임원급 비서실장과 실무진 3명 정도에 불과했다. 무려 10배 가까이 덩치가 커진 것이다.
이는 비서실이 그룹 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계열사의 움직임을 관리·통제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실제로 삼성의 경우, 최근 화제를 모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를 비롯, 계열사 사업재편 등 굵직한 현안에 있어 그룹 비서실이 사령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금융 계열사를 맡고,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건설·중화학을, 차녀인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이 패션·미디어를 맡는 이른바 ‘3분할 전략’을 비서실이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도 삼성처럼 비서실을 통해 비씨카드와 같은 이질적인 수십여 개의 계열사를 일사불란하게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보여진다.
이를 바라보는 노조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KT와 비씨카드, 스카이라이프 등 계열사 노조들은 이석채 회장 시절부터 사측과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어 왔다. 낙하산 인사, 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KT새노조 측은 “지난 한 해만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퇴출프로그램의 전면적인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측이 8300여명을 감축하는 대대적인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해 노조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스카이라이프는 최근 노조 집행부와 대의원 대부분을 무연고지로 전보조치했다가 법원으로부터 ‘부당전보’ 판결을 받고 노조원들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켰다.
▲ 황창규 KT 회장(왼쪽)이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모바일 아시아 엑스포 2014’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서준희 비씨카드 사장(오른쪽)의 삼성사회봉사단 사장 시절 모습. 같은 고향 출신에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KT의 대표적인 삼성 출신이다. (사진=연합뉴스,KT제공)
덩치 커진 노조, 건드리기 부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씨카드 노조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비씨카드는 2011년 KT 계열사로 편입된 뒤 노사 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전임 이강태 비씨카드 사장은 취임 때부터 정치권 낙하산 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KT 본사 윤리경영실 소속 현직 간부를 비씨카드 노무담당 팀장으로 채용, 노조 동향을 파악해오다 국회에서 정치쟁점으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비씨카드 노조 김현정 지부장은 12일 CNB와의 통화에서 현 상황을 ‘폭풍전야’에 비유했다.
김 지부장은 “서준희 사장이 삼성 출신이라 긴장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사측의) 두드러진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면서도 “최근 KT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데다, 서 사장이 황창규 회장 사람으로 알려진 만큼 경계심을 놓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황 회장이 KT에 대해서는 과감한 인력감축을 단행하면서도 아직 비씨카드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비씨카드 노조의 특수성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민주노총 내에서도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알려진 비씨카드 노조는 지난해 스카이라이프 노조와 공동대책위를 꾸려 사측에 맞선 결과, 조합원 원직 복귀 등 상당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스카이라이프와 비씨카드는 KT의 50여 계열사 중 유일한 민주노총 소속이다. 스카이라이프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비씨카드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에 각각 가입돼 있다.
더구나 비씨카드 김현정 지부장은 여수신업, 생명보험업, 손해보험업, 증권업 등 분야별로 58개 금융사 노조가 가입돼 있는 사무금융서비스노조의 전국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긴밀히 연대를 맺으며, 회사 내부 문제 뿐 아니라 세월호 진상 규명 등 굵직한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서 사장이 독단적으로 비씨카드 노조를 건드리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황 회장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 자칫 노조와 충돌을 빚을 경우, KT는 물론 삼성 이미지에까지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출신인 서 사장이 (노조가 아닌) 사원협의회를 통한 노사 간 협의방식을 선호해 온 ‘삼성 문화’에 익숙한 만큼, 노조를 탐탁히 않게 생각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며 “그렇다고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있는 만큼 대놓고 노조 문제를 건드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KT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지만, 현재까지는 노조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