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소득 증가율, 가계의 2배 수준
가계 빚 사상 최고치 속에 10대 그룹 사내유보금 3년새 146조↑전문가 "기업 잉여소득, 가계로 흘러가는 선순환 구조 필요"
(세종=연합뉴스) 이상원 박용주 김승욱 차지연 기자 =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기업의 과다한 유보금이 가계로 흘러가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은 가계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기업의 소득을 활용해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에 차이가 크지 않았던 기업과 개인의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외환위기 이후 2배 가까운 수준으로 벌어졌고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했다. 이에 비해 기업은 대규모 이익을 얻고 있지만 대부분을 내부에 유보하고 있어 기업소득이 가계로 원활하게 흘러들어 가지 않고 있다.
◇국민총소득 중 가계 비중 감소
13일 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1975년부터 1996년까지 법인의 총처분가능소득 연평균 증가율은 31.7%로 같은 기간 개인의 27.5%보다 4.2%포인트 정도 높았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부터 2012년까지 법인의 총처분가능소득 연평균 증가율은 9.4%로 개인(5.5%)의 2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법인의 총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법인과 개인을 포함한 전체 총처분가능소득 증가율 6.4%를 훨씬 웃돈다.
이에 따라 국민총소득 중 기업의 비중은 2000년 16.5%에서 2012년 23.3%로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가계의 비중은 68.7%에서 62.3%로 떨어졌다. 경제 전문가들은 가계소득의 상대적인 둔화 원인 중 하나로 기업 소득이 가계로 흘러들어 가는 정도가 약화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가계의 소득 둔화는 소비와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내수의 회복 속도가 전체 경기의 회복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과를 유발했다.
◇가계 빚은 눈덩이…기업은 현금 쌓아두기
가계는 부채가 늘어나고 있지만 기업들은 돈을 쌓아두고 있다. 가계 빚은 계속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며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가계신용은 1천24조8천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조4천억원 증가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신용은 가계부채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통계다.
가계의 저축 증가율은 계속 둔화되고 있다. 작년 말 현재 가계의 은행 총예금은 501조7천19억원으로 1년 전보다 6.6% 증가했지만 이 가운데 저축성예금(459조7천435억원)은 5.5% 늘어나는 데 그쳐 6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가계의 저축성예금 증가율은 2010년 16.0%까지 상승한 이후 2011년 9.4%, 2012년 6.2% 등 3년 연속 둔화세를 보였다. 가계의 여유자금이 풍부하지 않다는 의미다.
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대기업의 현금성 자산 규모는 5년 사이에 300% 이상 증가했고 사내유보금은 급증하고 있다.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 등을 인용해 "3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 규모는 2008년 37조에서 2013년 158조로 327% 증가했다"고 밝혔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현재 국내 10대 그룹 82개(금융사 제외) 상장 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477조원으로 2010년 말 331조원보다 43.9%(146조원) 늘어났다. 사내유보율도 1천376%에서 1천668%로 292%포인트 상승했다. 비금융 기업의 총저축률(기업의 총저축액/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2011년 15.4%를 기록, 1년 전의 16.3%보다 소폭 떨어졌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로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기업의 총저축률이 높다는 것은 번 돈 중 투자하지 않고 소득으로 남겨두는 돈이 많다는 의미다.
◇"기업 소득의 가계 환류, 긍정적 구상"
경제 전문가들은 가계와 기업의 확대되는 소득 격차 등을 고려할 때 가계 가처분소득 증대 방안으로 대기업에 잠겨 있는 자금을 가계 쪽으로 돌리려는 최경환 후보자의 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국민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기업의 잉여 소득이 가계 소득으로 환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학계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기업 유보금이나 배당 등을 통해 가계 가처분소득을 늘리겠다는 최 후보자의 구상은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시키는 방법이 중요하다"면서 "기업의 배당 성향을 높일 수 있는 정책과 함께 최저임금제를 통한 실질임금 인상과 노동시장의 근로조건 격차 축소 등에 대해서도 정부가 고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기업의 배당 등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늘리고 이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교수는 "배당 증가가 가계 소득이나 소비 증가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시키는게 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