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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방관사회 / 김누리

한겨레 2014.08.19 07:36 조회 수 : 4309

[세상 읽기] 방관사회 / 김누리
한겨레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윤 일병 폭행치사 사건에서 이 병장의 잔혹하고 엽기적인 폭력행위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동료 병사들이 보인 태도였다. 그들은 극단적인 폭력이 자행되는 ‘곁에서 보고만’ 있었다. 말리거나 저지하지 않고, 방조하거나 동조했다. 무엇이 이 평범한 젊은이들이 시민적 용기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의 전우애조차 발휘하지 못하게 했을까?

이들이 윤 일병에게 보인 ‘방관’의 태도는 세월호 선원들이 승객에게 보인 태도와 다르지 않다. 수백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유유히’ 배를 빠져나왔다. 맞아 죽어가는 동료를 외면한 병사들이나 수장돼가는 승객을 두고 도망친 선원들이나 모두 인간의 생사가 좌우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싸늘한 방관자의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이 사건들이 보여주는 것은 특정한 개인의 일탈이나 무책임이 아니다. 이 병장의 잔혹성이나 이 선장의 비열함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사회가 구조적으로 그런 폭력성과 비열성에 기대어 돌아간다는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감수성을 잃어버린 채 방관자가 돼버렸다는 사실이다.

윤 일병 사건과 세월호 사건의 사회적 여파가 이리도 큰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본성을 드러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시민이 격분하는 이유도 스스로 이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병사들이 윤 일병에게, 선원들이 승객에게 보였던 동일한 태도를 우리도 일상에서 매일매일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보이고 있지 않은가? 병사들과 선원들이 보인 방관의 태도는 우리가 우리 사회에 대해 보이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예외가 아니라 보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사건들은 단순한 윤리적 차원을 넘어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 헌법 제1조가 규정하는 ‘민주공화국’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준다. 방관자들로는 민주공화국을 존속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은 알다시피 시민의 참여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체제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공화국이란 “개인들의 인격이 모두 결합된 공적 인격”이고, 시민이란 “공화국의 주권에 참여하는 개인”이다. 즉 ‘주권에 참여하는 시민’이 없으면 공화국도 없다. 방관자들의 집단은 공화국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는 방관사회다. 시민들은 참여하지 않고 방관한다. 방관은 군대 내무반이나 세월호 선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네 일상이다.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것이 ‘나만 빼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공적 정의’를 위해 참여하는 시민은 극소수다. 대학의 학생회든, 기업의 노조든, 시민단체든 공적 이해를 위한 기구에 참여하는 시민의 수가 우리처럼 적은 나라는 드물다.

특히 정치의 경우 시민들의 ‘방관’은 극단적이다.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만, 아무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정치평론가는 넘쳐나지만, 정치활동가는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진보정당을 제외하면 한국 정당의 본색은 ‘당원 없는 정당’이다. 이는 매력 없는 정당 탓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관하는 시민 탓이기도 하다. 모두 곁에서 훈수만 둘 뿐 참여하지 않는 사회, 정치혐오를 좀더 세련된 정치적 취향인 양 조장하는 방관사회에서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실현될 수는 없다.

한국 사회가 위대한 정치혁명의 전통을 지녔음에도 여전히 민주적인 사회를 이루지 못한 것은 참여사회로 나아가지 못한 채 방관사회에 고착돼버렸기 때문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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