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유망한 증권맨, 그는 왜 직장에서 목을 맸나
[단독] 직장 동료 "엉업 스트레스 심했다"... 회사측 "업무와 연관성 없는 일"
▲ HMC투자증권 본사 | |
ⓒ 연합뉴스 |
마감(데드라인).
노아무개(43)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톡 대문에 올린 단어다. 그가 세상을 등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기도 하다. 에이치엠씨(HMC)투자증권 수원지점 영업사원이던 노씨가 목을 맨 채 발견된 것은 지난 3월 28일 오후 4시께였다.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증권 장 마감이 막 끝난 시각. 그는 인적이 드문 회사 비상계단에서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그의 카카오스토리에는 온통 초등학생 1학년 아들 사진이 채워져 있었다. 주변에선 그를 '아들 바보'라고 불렀다. 가족에 애착이 컸던 그는 왜 회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노씨는 지난 2010년 4월 HMC투자증권에 입사했다. 그는 아이비케이(IBK), 동양, 우리투자증권 등을 거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증권맨'이었다. 그런 그에게 문제가 생긴 건 지난 1월. 회사에서 영업 급여 BEP(손익분기점)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자신의 급여에서 영업실적을 120%까지 올리지 못하면 전체 급여의 25%가 삭감되는 것이다. 과장이었던 노씨의 경우 매달 620만 원에 해당하는 영업실적을 채워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월급에서 140만 원이 빠지게 된다.
이 제도를 두고 당시 직원들의 불만은 컸다. 주식거래 급감으로 실적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는 직원들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또한 성과를 못 낼 경우 감봉뿐 아니라 퇴출 1순위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컸다. 이 때문에 지점의 영업 직원들 스트레스는 날로 커지고 있었다.
"공산당 투표 같았던" 새 급여체계
▲ 노 씨의 카카오톡. '마감'이란 알림말이 쓰여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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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사는 이 제도를 밀어붙이며 직원들의 동의서를 일일이 받았다. "윗사람들이 내려와서 서명하라는데 반대 서명하기는 불가능", "마치 공산당 투표 같았다"는 것이 직원들의 전언이다.
노씨의 경우 작년 영업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실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영업BEP까지 도입되면서 심적 스트레스는 더해갔다. 특히 회사는 소장펀드, 퇴직연금상품 등 각종 캠페인을 벌이며 업무 할당량을 정해놓고 영업직원들을 압박했다. 회사는 아침, 저녁으로 실적을 확인했고, 직원들은 하루 목표치, 언제까지 영업실적을 달성할지 계획서를 써내기까지 했다.
그러는 와중에 실적이 떨어진 노씨는 결국 2월 급여가 깎였다. 낙심한 그에게 동료들은 "분기에 실적 평균을 넘기면 한 두달 깎여도 만회가 되니 남은 기간 동안 채워보자"고 독려했다고 한다.
3월 28일 금요일. 월말이었다. 노씨는 그 달도 실적이 모자랐다. 그날 아침에도 본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월말이니 내일까지 실적을 채워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오후 3시 30분께. 장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씨는 친한 동료 A씨의 방에 찾아갔다. A씨에 따르면 당시 노씨는 "1억 원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A씨는 "너무 큰돈이어서 힘들 것 같다고 했는데 (노씨가) 왜 그 돈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담배 한 대를 피우겠다며 사무실을 나간 그는 4시께 2층 회사 비상계단에서 목을 맸다.
▲ HMC투자증권 수원지점이 있는 건물의 비상계단. 지난 3월 노 씨가 목을 맨 체 발견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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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은 "건물에 비상계단이 두 개 있는데 한 쪽은 흡연이 가능해 사람이 자주 드나들지만 (노씨가) 목을 맨 곳은 금연이라 사람이 뜸하다"며 "동료들이 발견하고 나한테 말해줘서 바로 근처 파출소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키는 175cm정도에 건장한 체격이고 흰 셔츠에 검은 양복차림이었다"며 "동료들과 함께 (노씨를) 내려서 바닥에 눕히자마자 119 구급대원들이 와서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노씨는 맥박이 약하게 잡히는 상태로 근처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4월 1일 사망했다. 담당 수원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유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씨 장례식장 찾은 회사 간부 "직원 퇴근시키고 언론 막아라"
노씨의 죽음은 HMC 투자증권 직원들에게 충격이었다. 동료 A씨는 "(노씨가) 병원에 있을 때 상무와 본부장이 와서 한다는 소리가 '직원들 퇴근시켜라', '언론 막아라'였다"며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기자가 오면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는 말만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사건이 있던 날 아침 본부장으로부터 실적압박 전화를 받고 (노씨가)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동료들은 노씨가 평소 사내 축구·야구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밝은 성격이었다고 말한다. 또 자신의 SNS를 초등학생 아들 사진으로 가득 채울 만큼 평소 가족에 대한 애착도 강해 그의 자살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또 다른 지점 영업사원 김아무개(28)씨는 "수원지점은 영업실적이 괜찮은 편인데 자살사건이 생기고 갑자기 지점이 통폐합 됐다"며 "동료가 그렇게 되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상심이 클텐데 회사는 이를 빨리 덮으려고만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HMC투자증권 수원지점. 노씨가 근무한 곳으로 지난 7월 평촌과 통폐합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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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HMC투자증권 쪽은 직원의 자살과 회사 업무 간에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 홍보 관계자는 "(노씨의) 자살 이유는 개인적인 채무와 가정사 때문이었다"며 "물론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인 이유가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지점 폐쇄는 적자 때문에 영업전략의 일환으로 내린 결정"이라며 "자살과는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 자살한 직원은 노씨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이 회사 인천지점장과 2012년 북울산지점 대리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