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SL을 기억하시나요. 1999년 ADSL(전화선을 이용해 컴퓨터가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게 하는 통신수단) 기반의 서비스가 등장해 초고속인터넷 시대의 개막을 알렸습니다. 이후 VDSL, FTTH 등의 새로운 기술이 차례로 개발돼 속도는 계속 빨라졌죠. KT는 올해 하반기부터 기존보다 10배 빠른 ‘기가 인터넷’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네요.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영광스러운 모습 뒤로 초창기 개발자들은 하찮은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MBC ‘다큐스페셜’은 지난 15일 ‘전봇대 가장(家長), 희망퇴직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KT에서 명예퇴직하거나 희망퇴직 예정자로 선정된 직원들의 사연을 다뤘습니다. 방송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엔 ‘한국 ADSL 최초 도입자 근황’이라는 글이 올라 네티즌들을 울렸습니다.
방송에서 KT 재직자 공규식씨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알리며 답답한 심정을 밝혔습니다. 공씨는 KT의 인터넷 사업 초창기 구성원으로 ADSL을 개발하고 상품화하는데 공을 세웠습니다. 한국의 인터넷망 사업의 발전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런 공씨가 현재 맡은 업무는 ‘전봇대 업무’입니다. 어떤 업무냐고 물으니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잘못 설치된 전봇대를 찾아 사진을 찍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진 찍어서 보내는 것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게 일의 전부”라고 토로했습니다. 희망퇴직을 하라는 회사의 권고에 공씨가 따르지 않자 이 같은 일을 부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업무를 맡은 동료 직원들은 한때 KT의 핵심 두뇌였던 공씨와 함께 일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이들도 희망퇴직을 거부했다가 전봇대 업무를 하게 됐다고 하네요. 최연호씨는 공씨에 대해 “KT 연수원에서 직원 교육을 했던 사람”이라고 말했고, 이동근씨는 “외국에서 기술을 배워온 공씨가 한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며 공씨를 한껏 추켜세웠습니다.
공씨도 “IMF 때 한국 최초로 ADSL을 상품화 시키는 일을 제가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엔 “회사에서 필요 없어진 것이다. 그게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습니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전봇대에 올라야했던 50대 여직원의 사연도 소개됐습니다. 퇴직자 육춘임씨는 “영동전화국 뒤에 가면 전봇대가 하나 서 있다”며 “전봇대에 올라가는 것을 가르치려고 뒤뜰에 세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육씨는 당시 위암 수술을 앞둔 남편이 있어 쉽사리 일을 그만둘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3년을 7m 높이의 전봇대에 올랐다고 하네요.
네티즌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헌신했다가 헌신짝처럼 버려진 것 아니냐”며 분노했습니다.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지 내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밖에 “집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 있게 만든 분을 저렇게 대우하다니” “웬만한 대기업은 모두 저렇다” “에디슨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까” “낙하산 인사가 문제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왔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대한민국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사람이 자원인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언제부터 세상 살기가 이렇게 각박해진 것일까요. 참 씁쓸합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친절한 쿡기자] 한국 ADSL 최초 도입자의 슬픈 근황… KT 너무해입력 : 2014.09.18 06:00
MBC 다큐스페셜 ‘전봇대 가장-희망퇴직 이야기’ 캡처
MBC 다큐스페셜 ‘전봇대 가장-희망퇴직 이야기’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