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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의 ‘썸’타기…당신도 지금 신형 우울증?

한겨레 2014.09.26 00:19 조회 수 : 4598

우울증과의 ‘썸’타기…당신도 지금 신형 우울증?
한겨레

[매거진 esc] 아리카와 마유미의 요즘 여자

 
예전부터도 직장인들에게 우울한 느낌은 곧잘 찾아왔다. 이를테면 일요일 저녁 방송하는 가족 애니메이션 <사자에상> 시작과 동시에 침울해지는 ‘사자에상 증후군’, 회사에서 함께 밥 먹을 상대가 없을 때 느끼는 ‘런치메이트 증후군’ 등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날그날 기분을 나타내는 말에 ‘질병’으로 여겨졌던 우울증이 단골로 등장한다. “회사 상사 때문에 ‘쁘띠 우울’이야”, “여동생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섭식장애에 걸렸어”와 같이 우울증을 커밍아웃하는 말을 듣는 게 더이상 놀랍지 않다.

 
일상에서 우울증이라는 질병은 당당한 지위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책 <1억명 우울 사회>를 쓴 정신과 의사 가타다 다마미는 “우울해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구조” 탓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경제불황의 여파로 급여 삭감, 명예퇴직, 장시간 노동, 실업이 장기화되면서 ‘이렇게 되고 싶다’는 자기애와 ‘고작 이것뿐인’ 현실 속 자신과의 격차를 메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엔 우울증 환자들이 대부분 자신을 탓하고 다그쳤다면, 최근에는 사회나 타인을 우울증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탓이다’라고 하는 ‘신형 우울증’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 포스터. 누리집 화면 갈무리
 
‘신형 우울증’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는 데 있다. 심리학자인 우에키 리에는 책 <우울증이 되고 싶은 병>에서 “일본에서는 특히 뛰어나고 우수한 여성들이 ‘신형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의식이 강한 이들은 남들에게 “나는 우울증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지만, 실은 그중 60% 정도는 의학적 치료까진 필요 없는 ‘우울 흉내’라고 했다.

 
우울을 흉내내고 있다면 ‘흉내’를 그만두면 되는 것일까? 신형 우울증은 정상이 아니라 미병 상태다. 방치하면 집단적으로 진짜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는 전초 단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우울증은 증세가 약물로 쉽게 호전되지만 신형 우울증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우울증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우에키 리에는 여성이 신형 우울증에 더 취약한 이유로 “여성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생각을 강요하는 ‘포지티브 싱킹’에 더 강력하게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한 ‘포지티브 싱킹’으로 진짜 자신의 기분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억지로 연출하는 강한 이미지와 거리가 생길수록 마음은 갈등하고 지치게 된다. 신형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것, 일을 할 때는 심한 우울함을 느끼지만,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병’이라기보다는 게으름을 피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가면을 쓴다면 스스로 마음의 골을 깊게 파는 셈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노릇이다.

 
갈수록 신형 우울증에서 남녀를 가리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일본에서 기업들이 젊은이들을 낮은 임금에 대량으로 채용하고, 그들에게 과중·위법 노동을 시켜서 차례차례 이직하도록 몰아가는 이른바 ‘블랙기업’이 성행하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인격적 매도, 수치감, 모욕감 등 정신적 이상을 느낀 이들의 자살이 잇달았다. 십수년 전에 나온 ‘멘탈 헬스’라는 말이 요즘 새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를 보면 과로나 괴롭힘이 이유가 되어 산재로 정신질환을 신청한 사람의 수는 2013년 1409명으로 역대 최고치다. 스트레스 사회 안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든 적든, 무언가에 불안과 불만을 안고 마음의 건강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아리카와 마유미 작가·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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