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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구조조정이 남긴 것] 남은 자와 떠난 자 ‘4인 4색’

경향신문 2014.09.29 09:03 조회 수 : 4884

[KT 구조조정이 남긴 것]남은 자와 떠난 자 ‘4인 4색’

지난 4월30일 KT는 명예퇴직자 8304명을 확정·발표했다. 2003년 5497명, 2009년 5992명 이후 세 번째 대규모 구조조정이었다. 이로 인해 KT 임직원은 약 3만2000명에서 약 2만4000명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회사는 “직면한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과 함께 KT는 CFT(Cross Function Team)라는 조직을 신설, 41개팀에 291명을 발령냈다. CFT는 현장 마케팅 및 고객서비스 활동 지원, 그룹사 상품판매 대행, 네트워크 직영공사 및 시설 관리 업무, 기타 현장 지원 등을 업무로 한다. KT 새노조는 CFT가 퇴사를 종용하기 위한 임시조직이라고 주장했지만 KT는 “현장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신설 조직으로 직원 퇴출 부서는 사실 무근”이라고 맞섰다.

구조조정 이후 KT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명퇴한 뒤 제 갈 길을 찾아간 사람, 협력사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한 사람, 명퇴를 거부하고 CFT로 간 사람, 남아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사람 등 각자의 처지가 달라졌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 위주로 구성된 KT의 CFT에 속한 박진태씨가 경기 하남시 풍덕동에서 설비에 이상이 있어 보이는 전봇대를 휴대전화로 찍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CFT 배치된 박진태씨
“인터넷 설치 업무 맡다 상품 전단 들고 거리로”


박진태씨(57)는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현관을 나설 때마다 고민한다. “이 일을 그만두고 나면?” 박씨는 “전단지를 들고 아파트 상가를 누비며 하루에 족히 150번은 넘게 ‘그만둬야 하나’ 고민한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박씨는 KT의 서울 양재지사 수서지점에서 IT엔지니어로 일했다. 한국에 인터넷이 도입될 당시부터 각 가정·건물마다 인터넷을 설치·개통하고 유지·보수하는 일을 해왔다.

지난 4월 8304명의 동료가 명예퇴직을 신청했을 때 박씨는 회사에 남기로 했다. 회사는 박씨를 CFT(Cross Function Team)에 배치했다. 회사는 “현장 마케팅, 고객서비스 활동 지원, 그룹사 상품 판매 대행, 네트워크 직영공사 및 시설 관리 업무, 기타 현장 지원 업무를 할 것”이라고 했다. 구조조정으로 인력이 부족한 부서에 지원을 나가게 될 것이란 얘기도 있었다.

오전 9시 박씨는 KT계열사 상품 전단지를 한 뭉치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전단지를 뿌리며 아파트 단지를 돌다 이상이 있거나 단자 뚜껑이 열린 전봇대를 휴대전화로 찍어서 보고한다. 

박씨는 “네트워크 망을 관리하던 직원, 장비 운용법을 가르치던 직원까지 전봇대 사진 찍으러 다닌 지 5개월째”라며 “열심히 한다고 표가 나는 것도 아니고 개선되는 것도 아니어서 의욕이 안 생긴다”고 했다.

다른 동료들은 임대 단말기 회수 업무를 맡았다. 경기 하남시에서 경기 광주시 모뎀을 회수하러 갈 때도 있다. 모뎀 3개를 회수하기 위해 하루 100㎞ 이상 이동하는 셈이다.

직원들은 처음엔 회사 조치에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20~30년간 쌓아온 직원 개개인의 경험과 능력은 CFT 업무에서 필요하지 않았다. “올해 실적이 없으니 내년엔 급여가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타성에 젖는 거예요. 그렇게 고립돼 있을 때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어느새 스스로를 필요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에요.”

‘고립’은 낯선 일이 아니다. 노조지부장 임기를 마친 2003년 사측은 박씨를 전북 부안군 위도라는 섬으로 인사발령했다. 박씨는 동료도 없는 전화국에서 6년2개월간 혼자 일했다. 2009년 서울로 올라온 박씨에게 회사는 명퇴를 권유했다. 박씨는 그 이후로 줄곧 버티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 자진 명퇴한 구경모씨
“매달 실적 압박… 경쟁 강요하는 분위기 싫었다”



구경모씨(45)는 지난 4월 함께 명퇴했다. 회사로부터 명퇴권고를 받지는 않았다. 구씨는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 했다. 구씨는 후회하지 않는다. 구씨는 “돈을 벌어도 버는 게 아니었다.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구씨는 영업직으로 일했다. 고객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 일은 구씨에게 잘 맞았다. 20~30층 고층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전단지를 붙이는 일, 사무실에서 고객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정리해 전화를 돌리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휴대전화를 많이 팔면 실적으로 연결됐다.

회사는 실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얼마나 많이 팔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구씨는 영업을 하면 할수록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달 거둔 좋은 실적은 이번 달 하한선이 됐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직원들은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했다. 고객이 휴대전화를 한대 사면 영업직원이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20만원을 대신 내주는 구조였다. 고객에게 주는 일종의 리베이트였다. 할수록 문제가 생기지만 이처럼 무리한 영업을 안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구씨는 말했다. 우수한 실적으로 최고경영자(CEO) 표창장까지 받은 영업직원이 4000여만원의 빚더미에 깔리기도 했다.

이처럼 실적을 위해 손해를 강요하는 구조를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온 구씨는 “20년을 다닌 회사인데 남은 정도 없고 좋은 기억도 없다”고 했다.

경쟁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은 동료 직원을 감시하고 상대의 실적을 가로채기도 한다. “현장직에 계신 분들이 영업 성과를 올리면 영업직이 전산 입력 작업을 하거든요. 그때 현장직원 이름 대신 자기 이름을 올려버리는 거죠.”

구씨가 퇴직을 결정했을 때 가족들은 걱정이 많았다. 명퇴자로 살기엔 이른 나이였다. 그러나 회사에 대한 기대를 잃은 구씨는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는 것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좋다”고 판단했다. 퇴직 한 달 후 구씨는 요리주점을 열었다. 아직은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나 휴일이 없어 버겁다고 했다. 구씨는 “그래도 내 일을 한다는 점, 뒷돈 없이 돈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잘한 결정이라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 새노조 활동 김미영씨
“절망 바이러스… 인간미 사라지고 경직된 구조만”



김미영씨(45)는 1992년 한국통신 무선국으로 입사해 국제전화국, 동대문전화국, IT서포터스, 신촌전화국 등에서 일했다. 현재 여의도지사에서 일하는 김씨는 그간 단행된 3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모두 지켜봤다.

김씨는 정든 직장에서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동료들을 수도 없이 봤다. 그때마다 “다른 곳에 발령난다”, “여기 일 없어진다” “이번에 안 나가면 넌 찍힌다”는 소리를 들었다. 김씨는 화가 났다. “동료를 몰아내는 당신들도 언젠가 그 자리에 서게 될 텐데….”

세 아이의 엄마인 김씨는 KT새노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회사 구조조정 방침에 반대하고 부당한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고 있는 김씨도 한때 직장에서 희망과 행복을 느낄 때가 있었다. 희망은 주로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왔다. 김씨는 “서로 고마워하는 감정을 느끼며 일할 때가 있었다”고 했다. 승진을 앞둔 동료가 있으면 팀 내에서 실적을 양보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포상금을 모아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문화도 있었다. 실력 있는 직원에겐 기회도 많았다.

김씨는 “인간미가 사라진 삭막하고 경직된 구조만 남았다”고 했다. 부서 내 직원에게 경조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챙기던 문화는 점점 사라졌다. 실적 경쟁으로 승진과 임금, 처우가 갈리니 서로가 서로의 실적을 감시하는 풍토가 자리잡았다. 직장 상사에게 선의로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커피 한잔 하시죠”라고 건네면 주변에서 “아부하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가 날아온다. 김씨는 “사막에 먼지가 날리는 듯한 마음”이라고 했다.

매일 김씨는 갈등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세태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과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이의 갈등이다. 

김씨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의문에 가로막힌다고 했다. 주변의 시선과 윗선의 평가 앞에서 조급해지는 자신을 볼 때 김씨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슬프다”라고 했다.

■ 협력사로 옮긴 유갑성씨
“명퇴 압박 12년 버텨… 밀리고 밀려 막다른 곳에”


“죽지 못해 사는 거죠.” 말끝마다 한숨이 붙는 유갑성씨(56)는 인터뷰에 응하기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종일 바쁜 유씨는 낮시간에는 연락이 어려웠다. 오후 9시가 훌쩍 넘은 시각 어렵사리 전화가 연결됐다.

1985년 KT에 입사해 30년간 근무한 유씨는 지난 4월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유씨는 2003년부터 명퇴 압박을 받기 시작해 12년을 “버텼다”고 했다. 그는 “‘밀리고 밀린 자리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실험실에서 근무를 시작해 교환실, 전송실을 거쳐 2009년부터 ‘현장 일’을 시작했다. 현장 일은 인터넷·일반전화·유선방송 등 각종 상품을 판촉·개통·애프터서비스(AS)하는 작업을 말한다. 사무실에서만 일하던 유씨에게 고객을 마주하는 현장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유씨는 “처음엔 지방으로 안 보내는 것만 해도 고마웠다”면서 “노조 활동을 하는 하위직들은 지방발령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5년간 현장에서 일했다. 회사가 유선 사업을 축소, 외주화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기 퇴직이 없어지고 자녀 학자금이 끊긴다는 말도 나왔다. 유씨는 이번 명퇴 기회를 놓치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막차 표를 끊는 기분으로” 신청서에 이름을 적었다.

유씨는 다시 KT 협력사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때려 치우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평생 KT에서 지낸 중년의 노동자는 가족 생계를 책임질 다른 기술이 없었다. 회사는 명퇴 신청자들에게 2년짜리 일자리를 구해줬다. KT 협력사에서 유씨가 하는 일은 KT에서 하던 일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업무강도는 세지고 급여는 반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오전 8시 출근해 12시간 뒤 퇴근한다. 토요일 휴무 없이 일요일은 한 달에 3번 쉰다. 유씨는 “내가 서명하고 결정한 일인데 이제 와서 푸념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느냐”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여유도 없다”라고 말했다.

“큰 애, 작은 애가 모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이제 시집만 보내면 돼요. 딸들은 알아서 잘 하는데 아빠만 돈 많이 못 번다고 아내가 투박을 하네요.”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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