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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항공기와 외국 항공기, 승객 태도는 왜 다른가

노동존중 2015.01.05 03:02 조회 수 : 3563

한국 항공기와 외국 항공기, 승객 태도는 왜 다른가
하니Only
대한항공 기내는 ‘개인’이 없는 곳이다. 몸매도 비슷하고 심지어 비슷하게 생긴 여승무원들이 똑같은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고, 말하는 방식조차 똑같다. 졍형화된 서비스가 인간으로 체화된 공간이다. 승객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만 같다.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A380 기내. 김태형 기자 xogd555@hani.co.kr

노동계약 빈틈을 비집고
주인 행세하는 기업과 소비자… 
불매운동뿐 아니라 
과잉친절 강요 기업도 거부해야

[한겨레21]

공항을 내 집처럼 가까이해야 하는 게 나의 일이다. 긴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매번 호기를 부려보지만, 한동안 비행기를 타지 못할 때면 나도 모르게 공항으로 차를 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금단현상치고는 참으로 희귀하고 어이없다.

덕분에 비행기의 속살을 볼 기회가 많다. 사람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듯이 비행기 내부에서 살림을 꾸리는 방식도 참으로 다르다. 두 가지 장면이 아직까지 머리 속에 또렷하다. 첫 번째 장면은 싱가포르항공과 대한항공을 연결하는 출장길이다. 만사를 제쳐두고 자고 싶었던 나는 식사도 거절하고 잠을 청했다. 5시간 남짓한 비행 시간이었고, 나는 도착할 즈음에야 깨어났다.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났다는 걸 알고 놀랐다. 하지만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다. 내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자마자, 여자 승무원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식사를 하겠느냐고 물었다. 비몽사몽이던 내게 눈곱을 떼어낼 시간조차 주지 않은 민첩함이었다. 고맙기보다는 불편했다. 그녀가 노심초사 미몽 속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친 까닭이다.

비행기 안, 나를 지켜보고 있다

연결편으로 타게 된 대한항공은 ‘개인’이 없는 곳이었다. 몸매도 비슷하고 심지어 비슷하게 생긴 여승무원들이 똑같은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었고, 말하는 방식조차 똑같았다. 정형화된 서비스가 인간으로 체화된 공간이었다. 사무장은 다가와 고개를 90도 숙이고 인사를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내게 한다. 화들짝 놀라서 나도 엉겁결에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 나도 승객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그 광경의 생경함에 고맙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고개 숙인 그의 어깨 위에서 나는 서늘함을 느꼈다. 저돌적인 서비스는 불편하다. 모든 것이 가능하겠다는 착각마저 주는 밀폐된 공간에서 승무원들은 승객 눈치 보느라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도 같이 불안해졌다.

두 번째 장면은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에서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10시간 넘게 중노동을 하는 승무원들은 건장하고 엄격하다. 기내 규칙에 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어느 칸에 타고 있든지 그가 누구이든 관계없다. 때로는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느낌마저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신뢰가 간다. 그리고 승객 이름을 수고스럽게 외워서 부른다. 나도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들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자신을 필요 없이 낮추는 법 없이 당당하다. 절제된 친절함이다. 식사가 제공되고, 승객이 잠을 청하면, 승무원도 자유롭다. 잠에서 잠시 깨어 화장실에 가는 길이었다. 여승무원이 컴컴한 비행기 구석에서 의자를 가져다두고 희미한 불빛 아래 신문을 읽고 있다. 눈을 잠시 마주치자, 그녀는 지금은 쉬는 시간인데, 혹시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묻는다. 없다고 하니, 잠시 미소를 짓고 신문을 다시 읽는다. 나 또한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서 나는 노동하는 당당한 개인을 보았다.

네덜란드항공 여승무원 “지금은 휴식시간”

또 다른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좁은 기내에서 샴페인을 제공하다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긴다. 급하게 가지고 와서 병을 열다보면, 샴페인이 터져서 승객 옷에 쏟아지는 ‘참사’도 생긴다. 연전에 어느 유럽 항공기에 탄 한국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 파란 눈의 승무원은 당황해하면서, 승객에게 티슈를 건네고 주위를 닦았다. 한국인 승객도 놀랐지만, “이건 파티 같네요” 하며 오히려 승무원을 위로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정리되었다. 어느 한국 국적 항공기에서도 같은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한국 승객이 진노했다. 여자 승객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 승객은 험한 소리를 내뱉었다. 여승무원은 중죄인처럼 빌었고, 다른 승무원도 단숨에 달려와 용서를 구했다. 겨우 정리가 된 뒤에도, 승객은 좀체 화를 풀지 못했다. 여승무원은 비행기 뒤편으로 불려간 뒤로는 내내 풀 죽어 있었다. 같은 사고에 대한 반응은 이토록 달랐다.

땅콩을 봉지째 갖다줬다며 승무원에게 폭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옛적에 장자가 빈 배를 두고 한 말이 있다. <장자> 외편에 나오는, 널리 회자되는 얘기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다가 빈 배에 살짝 부딪히게 되면, 그가 아무리 성격이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낼 까닭이 없다. 하지만 그 배에 사람이 있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소리를 치면서 난리를 치게 되고, 욕설도 마다하지 않는다. 배에 살짝 부딪혀서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사실은 똑같은데, 왜 한 번은 화를 내고 다른 한 번은 그러지 않는가? 장자가 이르기를, “앞에서는 노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노하는 것은, 앞서는 빈 배였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장자는 삶을 빈 배처럼 살라고 가르쳤다. 그러면 싸울 일도, 화낼 일도 없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장자가 설명하지 않은 게 있다. 부딪힌 배에 사람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항상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그 배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사정은 달라진다. 지체 높은 분이 그 배에 있었다면, 빈 배에 부딪혔을 때 본능처럼 나올 ‘젠장’이라는 비명조차 내뱉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만만한 자가 있었다면, 욕설도 모자라 멱살마저 잡았을 터다. 결국 너와 나의 관계가 문제다.

빈 배에 지체 높은 분이 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아 생활해나가는 곳이다. 노동과 임금이 자발적 의사에 기초해 교환되는 노동계약이 핵심적이다. 자발성과 자유 때문에 노예 ‘계약’과 구분된다.

하지만 노동계약에는 빈틈이 많다. 특정 액수를 받고 특정 시간 동안 일하기로 약속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정작 어떻게 일할지는 애매하다. 실제로 이를 특정해서 계약서에 일일이 적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이를 ‘불완전계약’이라 부른다. 노동계약의 태생적 운명이다. 자유롭게 계약한 뒤 일터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불확실성의 공간이 열린다.

노동계약의 빈틈에 존중과 성취가 자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횡, 권위, 규율 그리고 물리적·언어적 폭력이 밀고 들어서기도 한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는 신뢰와 협동으로 돌파하는 장그래의 영업팀도 있고, 부장의 발길질과 욕설로 움직이는 팀도 나온다. 성희롱까지 가세한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자유로운 개인과 고용주의 계약이라는 노동계약이 팀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떠날 자유는 있지만, 이에 맞설 자유는 이론적일 뿐이다.

구입한 것은 인격 아니라 노동 서비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수많은 우리들은 경비원을 고용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노동 서비스를 산 것이다. 그들의 인격까지 산 것은 아니다. 노예계약이 아닌 까닭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험한 소리를 내뱉거나 무시하거나 홀대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하지만 노동계약의 빈틈 때문에 우리는 주인 행세를 한다. 저쪽 처지가 궁박해서 주인 행세를 용인해주면, 노동계약은 주종관계로 전환된다. 그래서 노동계약과 주종관계 사이의 간극은 그리 멀지 않다. 노동계약에서 노동자의 인격이 사라지는 이런 전환은 신속하고 쉽지만, 돌이키는 일은 더디고 고통스럽다.

영화 ‘카트’에서 기업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항의하는 고객을 달래기 위해 대형마트 서비스 노동자에게 무릎을 꿇게 한다. ‘영화인’ 제공
고용관계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은 고객에게도 홀대받기 마련이다. 영화 <카트>에는 마트에서 막무가내로 무시당하는 여성들이 나온다. 그녀들은 고객의 횡포에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 적나라한 이중 횡포를 영화는 충격적으로 그려낸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항의하는 고객을 달래기 위해 회사는 노동자를 고객 앞에 무릎 꿇게 한다. 고객은 기업을 통해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을 배운다. 샴페인이 내 옷으로 쏟아졌다고 해서 승무원에게 욕지거리를 마음껏 해댈 수 있는 고객의 자유도 그렇게 나온다.

평소 땅콩을 즐기지도 않았을 일등석 승객이 땅콩을 문제 삼아 비행기를 돌렸다. 재벌녀가 벌인 일대 촌극만으로 볼 일은 아니다. 구멍 성성한 노동계약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비극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녀도 딴에는 억울하겠다. 항공사의 고위 임원이 직원에게 소리 지르고 서류철을 던지고 하는 일은 <미생>에 나오는 일상이다. 그녀가 치명적으로 잊고 있었던 것은 그녀가 기내에 고용주이자 승객으로 있었다는 점이다. 비행기는 일터이자 승객이 머무르는 공공의 공간이다. 후자를 잊었다. 하지만 망각은 우연이 아니다. 대대손손 고용주이다보니, 그녀에게 ‘인간의 자유로운 노동계약’이란 추억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주종관계로의 전환은 오래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노동자 영혼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노동계약의 빈틈을 존중과 협력으로 채우는 기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착한’ 기업의 결단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사정이 너무 엄중하다. 노동자는 노동계약 이전에 한 인간이고 존중받아야 할 시민이다. 노동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이런 권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장자는 틀렸다. 빈 배로 살아갈 일이 아니라 배 안에 당당한 노동자 시민을 싣고 다녀야 할 일이다. 그래야 땅콩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할 수 있고, 고객 앞에 당당하게 친절할 수 있다. 당당하게 쉬면서, 며칠 밀린 신문도 뒤적거려볼 수 있다. 그러려면 생각과 힘을 모아야 한다. 불량기업에 대해서만 불매운동을 할 게 아니다. 정형화된 과잉 친절을 직원에게 강요하는 기업을 거부하고,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고객은 왕이 아니다. 고객은 자신이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소비자일 뿐이다. 기업도 왕은 아니다. 노동자의 노동 서비스와 자본을 잘 버무려 이윤을 내고자 할 뿐이다. 고객도 기업도 노동자의 영혼을 요구할 권리도, 파괴할 권리도 없다. 기업이 존중하지 않은 노동은 고객도 존중하지 않는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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