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노동자에게 선전포고
정치권만으로 노동문제 못 풀어''
▲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 | |
ⓒ 이희훈 |
▲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이 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남문 앞에서 복직요구 굴뚝 농성을 하고 있는 이창근 금속노조 쌍차지부 정책실장과 통화를 하고 있다. 한 위원장 뒤로 농성 중인 굴뚝이 보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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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 많이 얼었냐, 잘 모아둬야지. 나중에 식수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식수가 차단돼 에어컨 냉각수를 끓여 먹어야 했던 때가 떠올랐을까. 75미터 굴뚝에 매달린 동료들을 위해 그는 물 걱정을 했다. 그리고 건강은 괜찮은지, 책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었다.
영하 10도의 날씨, 동료가 머물고 있는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굴뚝에 있는 이들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다. 두 사람은 지난달 13일 새벽,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공장 내 굴뚝에 올라갔다.
'변방의 해고노동자', 총파업 이끌어낼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2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3년 임기를 시작한 한 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쌍용차지부장으로서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주도했고 3년의 수감생활이 이어졌다. 그리고 171일간의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간 있었던 일과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의 포부를 듣기 위해서다.
한 위원장은 임기 시작과 함께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노사만의 틀 안에서는 수많은 노동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인 이른바 '장그래'(인기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들을 확산 시키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같은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 폭주를 막기 위해 총파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파업 성공을 위해 그는 "우리가 싸워야 할 목표가 무엇이고 상대가 누구인지를 조합원들에게 선전할 것"이라며 "내부에서 투쟁 명분을 쌓고 국민들에게도 사전에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12일,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 대회에서 투쟁 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다.
비정규직 장그래들을 위한 대책도 내세웠다. 이른바 '장그래살리기 국민운동본부'다. 그는 "케이블방송 씨앤앰 노사가 해고자 복직을 이끌어낸 '진짜사장나와라 운동본부'와 비슷한 성격의 시민·노동운동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야권 일부의 '진보정당 재구성' 논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지금까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상하 수직 관계로 잘못 설정돼 왔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이 정당에 돈과 조직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노총의 분열과 세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다음은 한상균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아내가 전체를 봐야 한다고 했다, 놀랐다"
▲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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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일 옥쇄파업, 3년 수감생활, 171일 철탑 농성을 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로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됐다. 첫 직선제 선출이다.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옥쇄파업 도중에 내 동료가, 회사가 쥐어준 파이프를 들고 돌진해오는 모습을 옥상에서 지켜봤다.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노동자가 단결하지 않으면 자본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민주노조는 부단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본의 압박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 위원장 당선 뒤, 가족 반응은 어땠나.
"세월의 풍파를 겪었는지, 아내는 담담하게 생각하더라. 아내가 쌍용자동차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체를 봐야 하니까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했다. 운동가를 지도하는 내조를 보여줘서 놀랐다.(웃음)"
- 선거 공약으로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천명했다. '총파업 하자'는 단순 구호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 먼저 왜 해야 하는지, 총파업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설명돼야 할 것 같다.
"지금 이순간에도 여러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 그 현장들은 노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전교조의 법외 노조 투쟁,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한 손해배상 가압류, 노조파괴, 정리해고 등을 비롯해 공기업 구조조정, 공무원 연금 개악 등은 단순히 노사관계로 풀 수 없다. 전부 다 박근혜 정부와 싸워야 할 일이다.
박근혜 정부를 향한 승리는 총파업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의 투쟁에서 금속, 의료 등 산별연맹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이제는 전체 노동자의 명운을 건 투쟁이어야만 한다. 그걸 우리는 총파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각각의 의제들을 선제적으로 끌어모을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목표가 무엇이고 상대가 누군지를 조합원들에게 선전할 것이다. 내부에서 투쟁 명분을 쌓을 것이고 국민들에게도 사전에 공감을 얻을 것이다."
- 올해 상반기에 총파업 여건을 조성하게 되는 것인가.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물론 비정규직 종합 대책, 공무원 연금 개악은 올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다. 그때 가서 싸우기는 힘들다고 본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1월부터 총파업 투쟁 본부 체제로 전환한다. 이후 2월 12일에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 대회가 있다. 여기서 투쟁 방침을 구체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 그럼 구체적인 시점은?
"정부가 도발하면 싸워서 붙어야 한다. 어마어마한 일들을 선제적으로 준비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4월 임시국회 전에 준비를 끝내 놓겠다."
- 정말 총파업이 가능할까.
"함께 꿈을 꿔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역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 노예의 삶을 청산하자. 우리의 분노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 분노를 자본과 정권의 심장부에 겨누자."
- 민주노총은 현재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대화 채널을 만들 것인가.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정부와 대화 채널은 열려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박근혜 정권이 그동안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 전교조 법외 노조화 시도 등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또 현재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비정규직 종합 대책, 노동시장 개악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는 정부 들러리가 될 수 없다. 대화 이전에 선결과제에 대한 진정성을 정부가 보여야 한다."
-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맞서서 '장그래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출범을 제안했다. 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 역량의 절반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와 최저임금 문제는 결부돼 있다. 민주노총은 최저시급 1만 원을 내걸고 투쟁하겠다. 사실 집집마다 장그래가 한 명씩은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장그래의 문제를 내 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투쟁을 해도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그런 장그래가 전국에 9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을 민주노총이라는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세상은 미래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시민운동으로 확산시키겠다."
-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씨앤앰 노사는 해고자 복직을 합의했다.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과 씨앤앰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했고, 여기에 '진짜사장나와라 운동본부'라는 시민운동이 결합하면서 승리했다. 이 운동을 '장그래살리기 국민운동본부'와 연결시켜서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비정규직들이 '스스로 내가 노동자다', '더 이상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깨달을 만한 기회가 적었다. 민주노총이 그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 땅의 900만 장그래들을 책임지겠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상하관계... 잘못됐다"
▲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이 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남문 앞에서 복직요구며 이창근 금속노조 쌍차지부 정책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올라있는 굴뚝을 바라 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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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왔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나머지 정의당, 노동당 등이 흩어져 있다. 현재 야권 일부에서 대중적 진보정당 재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총도 이런 논의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하게 되나.
"지금까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상하관계였다. 민주노총이 정당에 돈과 조직을 제공했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분열했고 이는 곧 민주노총의 분열과 세력 약화로 이어졌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 대다수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이 투쟁을 열심히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문제로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진보정당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인가.
"지금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의 재구성을 리드해 낼 역량도 안 된다. 또 조합원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억지 춘향으로 그 노릇을 할 수는 없다. 조합원들에게 신뢰가 쌓이기 전에 말로만 떠드는 진보의 재구성은 허상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은 민주노총이 나서서 '진보정치 모여라', '통합해라'라고 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노동자 정치는 노동자 계급을 스스로 확인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국회의원 몇 명이서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힘이 없으면 진보정당 의원 100명이 있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안 바뀐다. 그걸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내적인 역량을 키우는 데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지금 진보정치는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치적 사상과 노선에 따라서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 당선 기자회견에서 '변방의 해고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처럼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 소수파다. 20년 민주노총,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제가 직선제로 당선된 배경에는 민주노총이 거듭나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엄중한 인식이 있었다고 본다. 전체 단결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갈 것이다. 소수파가 당선됐으니 한 색깔로 도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내에 다양한 뜻이 있다. 이것이 서로 상승 작용을 할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활동가들에게 변혁적·계급적 관점이 있어야 하지만 고인 물이 썩듯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활동가들이 투쟁 기조에 동의하도록 설득해내면 민주노총은 바뀔 수 있다."
- 해고노동자 2명이 굴뚝에 올라가 있다. 제2의 쌍용차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정리해고 기준을 완화시키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강하다. 맞설 수 있는 방안은?
"지금 쌍용차처럼 힘든 사업장이 여럿이다. 쌍용차 문제는 2012년 대선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정리해고 남용을 막겠다고 공약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정리해고 기준을 완화시키려고 한다. 지록위마가 따로 없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대량해고가 가장 쉽다. 정규직들에 대한 고용안전망이 가장 열악하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측) 결단의 문제다.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면서 시대의 아픔, 갈등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6년의 세월 동안 해고자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회사가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시민사회와 함께 부단하게 쌍용차사측에 요청할 것이다. 정리해고 문제가 마무리돼서 하루빨리 김정욱·이창근 동지가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 80만 조합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근혜 정권이 노동자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이제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더 쉽게 정리해고를 하게 하고 임금을 깎아서 기업을 배불리게 하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박근혜 정권과 싸워 이기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들은 2015년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준비할 것이다. 조합원 동지들도 다부지게 준비해서 승리를 함께 만들기 바란다. 투쟁의 앞자리에서 당당하게 나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