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근로자들이 일한 것만큼 임금을 받지 못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 1인당 생산량이 12%가량 늘어나는 동안 근로자들이 받은 실질임금 상승률은 3분의 1 수준인 4%대에 그쳤다. 늘어난 생산량보다 임금을 적게 올려 남은 이익은 기업의 몫이었다. 문제는 기업만 배를 불리는 사이 가계의 ‘소비 여력’이 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지속되면 종국에는 내수 위축이 심화돼 기업의 이익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생산량 3 늘 때 임금은 1 올랐다”=15일 국민일보가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에게 의뢰해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노동생산성은 2007년에 비해 12.2% 증가했다. 노동생산성은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취업자 수로 나눠 계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노동시간당 생산량을 계산하는 방식에 비해 기업이 얻는 생산 이익 측면에 더 집중하는 계산 방식이다. 반면 실질임금은 4.3%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박 연구위원은 “기업의 생산량이 3만큼 늘었는데 임금은 1만큼 오른 셈”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다른 국가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2012년 기준 한국의 취업자 1인당 GDP는 5만6710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3위에 그쳤다. OECD 평균 7만222달러에도 크게 못 미친다.
문제는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상승률의 격차가 한국에서 유독 크다는 점이다. 2007∼2012년 사이 한국의 노동생산성·실질임금 상승률 격차는 10.3% 포인트였다. 포르투갈(11.2% 포인트) 아일랜드(13.8% 포인트) 그리스(12.3% 포인트) 스페인(11.7% 포인트) 등 금융위기 이후 재정위기를 겪은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와 헝가리(11.7% 포인트) 다음으로 높은 격차다.
박 연구위원은 “급속한 고령화로 고임금 근로자가 은퇴 후 저임금 근로자로 전환되는 등의 구조적 변화가 일부 이유로 작용했다”면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임금을 아끼려는 기업의 추세가 임금상승률 둔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정부가 고용 유연화 정책을 펴면서 기업의 인건비 지출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수혜자는 기업, 기업 저축률 21.5%=박 연구위원은 “노동생산성이 는다는 것은 매출액이 증가한다는 의미”라면서 “매출액 대비 인건비를 아끼면 기업이 저축으로 쌓아둘 수 있는 돈이 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 기업들은 2008년의 위기를 겪으면서 저축률이 크게 높아졌다. 기획재정부 ‘국가경쟁력 통계’를 보면 한국의 기업저축률은 2013년 21.5%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기업저축률은 2007년까지 15% 내외로 10위 정도였지만 2008년 16.8%로 7위로 상승한 이래 계속 올라 2011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반면 가계의 저축률은 2013년 3.8%로 20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임금 상승 없는 성장’이 계속되면 가계의 소비 여력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결국 내수 위축, 기업의 수익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7∼2013년 사이 법인의 가처분소득은 109.5% 증가한 반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가처분소득은 34.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 교수는 “‘임금 상승 없는 성장’ 현상이 지속되면 내수가 위축되고 결국 기업 소득도 줄어든다”며 “실질임금이 노동생산성에 맞춰 증가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침체된 우리 경제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업이 임금 인상과 투자 등을 미루고 저축을 늘려왔다”면서 “이제 기업이 적극적으로 돈을 풀 시점”이라고 말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