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칼럼] ‘사회적 사망’과 사회건강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지테크 노조위원장이 4년간의 긴 부당해고·복직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박지만 회장은 기업가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 기본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포스코 사내하청회사인 이지테크에서 2006년 노조를 설립했지만, 회사로부터 금속노조 탈퇴를 요구받아 2011년에 해고당했다. 이후 부당해고 판결이 나긴 했지만 회사는 복직을 거부하며 또다시 해고했고, 법원은 그것을 부당해고라고 판결해 2014년 5월 겨우 복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그를 원래 일하던 곳이 아닌 공장 밖 사무실에서 1년간이나 일감도 주지 않은 채 고립시키다가 최근 또다시 정직 처리했다.
언제나 법은 멀고 해고조치는 너무 가깝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22명이 자살한 것을 비롯해서, 케이티(KT), 삼성전자서비스 등의 기업에서 해고, 전직, 노조활동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자살, 질병 등으로 생을 마감한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노동계는 이들의 자살을 ‘사회적 살인’이라고 규정한다. 아직 제대로 개념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는 노령, 지병 등 자연적 이유가 아닌 사회, 경제, 정치적 이유로 인한 사망을 ‘사회적 사망’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보고, 이번 이지테크 노조위원장의 자살은 노동계가 주장하듯이 “학대에 의한 살해”의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사망에는 우선 산재사망자가 포함될 수 있고, 빈곤, 실직, 노조 탄압, 해고 등으로 자살한 사람도 해당될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서 산재로 인한 사망자는 10만명당 18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2014년 한해만 2165명이 사망했다. 약간씩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거의 세배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전쟁 혹은 정치적 이유로 인한 사망을 훨씬 넘어선다. 즉 5·18 민주화운동 관련 희생의 거의 10배, 이라크전쟁 미군 병사 사망자의 4배가 매년 한국의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한국의 자살률은 30여명(10만명당 자살자 수) 정도로서 거의 10년째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중 상당수는 사회적 사망일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소득 수준과 자살 생각 간에 큰 함수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노인 빈곤층의 자살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봐서, 자살의 원인도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사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세계 최악이며, 따라서 한국은 사회 건강성이 매우 낮은 나라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영국의 사회역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불평등 사회일수록 사망률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적 불의가 결국 질병과 사망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사회가 상당수의 국민을 사형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보았다.
87년 민주화 이전까지 군 복무 중 사고, 자살로 죽은 사람이 매년 1000명 이상이었다. 1953년에서 2005년까지 비전투상황에서 죽은 군인은 총 6만여명이었다. 결국 과거는 군대에서, 오늘날에는 일터에서 멀쩡한 청장년 수천명씩 죽어 나가는 한국은 가히 사회적 사망, 국민사형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망은 개인 단위로 고립된 상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나 정책적 배려를 받지도 못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꺼번에 300명이 국민이 보는 앞에서 죽은 세월호 ‘참사’는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었다.
국가 경제력(GDP), 수출, 1인당 국민소득 등의 흔한 경제지표로만 보면 한국은 확실히 선진국가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사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여전히 후진국이고 심각하게 병든 나라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산재, 빈곤, 노조 탄압 등 사회적 불의로 매년 수천명 이상이 죽는 나라를 결코 선진국이라 말할 수는 없다. 국민들이 비자연적 이유로 죽음을 맞이할 확률이 낮은 나라, 즉 약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건강’, 생명존중을 새 사회발전 지표로 만들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