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 직원들에게 모출납 업무를 부여하는 것은 전형적인 토사구팽이자 현대판 고려장이다."(KB국민은행 A영업점 B씨)
최근 노사합의로 희망퇴직과 임금피크제 개선안을 내놓은 KB국민은행이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성낙조)는 "회사가 임금피크제 관련 노사합의를 위반했다"며 지난 15일부터 서울 여의도 본점 12층 윤종규 행장실 앞에서 연좌농성에 돌입했다고 16일 밝혔다.
◇KB국민은행 "모출납 할래? 마케팅 할래?"=노사는 지난달 12일 희망퇴직과 임금피크제 개선에 합의했다. 주요 내용은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에서 임금피크제와 희망퇴직 중 하나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선택한 직원은 마케팅직무와 일반직무 중 본인이 하고 싶은 직무를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사측이 일반직무의 범위를 대폭 확장하면서 생겼다. 합의문에 따르면 노사는 일반직무를 선택하는 경우 △일반 직무마케팅/여신사후관리 △내부통제 책임자/여신사후관리 △상담/빠른 창구 관리담당 △기업금융/외환 관리담당 등 4개 직무 중 업무경력을 고려해 부점장 판단하에 직무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지막 단서조항으로 붙은 "단, 차상위자 승인에 의해 별도 직무 부여 가능(VM 등)" 문구가 문제가 됐다. 사측이 별도 직무 범위에 합의 과정에서 한 번도 논의하지 않았던 모출납 직무를 포함시킨 것이다.
모출납은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현금출납을 관리하는 업무다. 오전과 오후 직원들에게 시재(현금)를 전달하고 회수하는 것으로, 보통 신입행원들이나 하위 직급 은행원들이 하는 일이다. 사측은 최근 1주일 동안 각 지역본부별로 임금피크제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모출납 아니면 마케팅 직무를 선택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부 관계자는 "모출납 업무는 노사합의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내용"이라며 "은행이 30~40년 경력의 임금피크 직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스스로 은행을 나가게 하려는 꼼수을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금피크제 직원 강제퇴직 유도하나"=임금피크제 직원들에게 모출납 직무를 부여한다는 소식은 임금피크제 직원뿐만 아니라 일반 직원들까지 술렁이게 만들고 있다. 최근 진행된 희망퇴직을 선택하지 않은 500여명의 임금피크제 직원들을 퇴출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은행측이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지난달 말 실시한 희망퇴직에서 임금피크제 직원 1천명 중 468명이 희망퇴직을 택했다.
지부에 따르면 최근 내부 인트라넷에는 "임금피크제 직원이나 이제 곧 진입할 임금피크제 예정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강제로 퇴직시키려는 것"이라는 취지의 비판글이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최근 희망퇴직으로 영업점별로 인력이 빠지면서 지점장이 효율적인 인력운용 방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모출납 업무가 효율적인 인력운용 방안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아무래도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센 것 같다"면서도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잡음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부는 임금피크제 개선 합의가 이행될 때까지 매일 아침 본점 로비 집회와 은행장실 앞에서 농성을 계속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