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내의 계급 차이, 넘을 수 없어요"
[아이들은 나의 스승 41] 사라진 계층 이동.. 논쟁이 무의미한 이유
[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선생님, 우리나라는 이미 틀린 것 같아요. 도무지 가망이 보이지 않아요."
이태 전 고등학교 시절 천재 소리를 들으며 서울대에 진학한 한 제자의 푸념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는 요즘, 지방의 인문계고 출신이 서울대생이 된 것만으로도 남부러움 살 만한 일인데, 그의 대학 생활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고1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겠다는 말을 달고 지냈던, 말 그대로 '공부만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막 입학해서는 표정이 환했다. 첫 학기 기말 시험을 마치고 내려와서는 대학에서 배우는 것 모두가 새롭다며 마냥 즐거워했다. 과목 중엔 어려운 것도 더러 있지만, 읽어가다 보면 책 속의 지식이 머릿속에 시나브로 전달돼 차곡 차곡 쌓여가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후배들은 아마 모를 거라면서, 고등학교 때와는 또 다른 공부 체험이라며 뽐내듯 말했다.
그는 지금 휴학을 하고 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여느 아이들처럼 일찍 군대를 다녀와 취업 준비에 매진하겠다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잠시 벗어나 쉬면서 생각 좀 하고 싶단다. '군대 생활이 무슨 휴양인 줄 아느냐'는 내 말을 그는 귓등으로 흘려듣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신나하던 대학 생활과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얼음 빠트린 커피 마냥 식어버린 이유가 뭘까.
"선후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학번 친구들과도 공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마치 종교에 대한 논쟁처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요? 정치나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이 그들과 전혀 달라요. 적어도 제 상식이 우리 과에서는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마저 있어요. 아예 그들이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 같아요. 물론 그들도 저를 그렇게 느낄 테지만요."
'통'할 수 없는 사회, '서열'이 문제다
그는 서울대와 지방대의 거리보다, 서울대 내의 '계급 차이'가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과냐, 이과냐의 문제도 아니고, 단과대나 학과 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같은 학과 내 친구들 사이에서도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고 표현했다. 그 가치관의 차이는 서울대생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격차라고 강조했다.
순간, 고등학교 시절 교내 토론 대회 때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단연 군계일학이었고, 그의 논리와 순발력 앞에서 상대 팀뿐 아니라 심사를 맡은 교사들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그때 토론 대회 주제가 '통(通)하였느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통의 문제가 광고 카피로 등장할 만큼 화두로 떠올랐고, 더욱이 송전탑 건설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첨예할 때였다.
그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원인을 서툰 소통 방식에서 찾았다. 서로의 입장에 서서 소통하려는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치인들이 부추긴 해묵은 지역 갈등과 세대 간 갈등의 폐해도 페이스북 등 SNS 사용이 확산되면 머지 않아 해결될 것으로 낙관했다. 이런저런 부작용에도 우리나라의 첨단 IT 환경은 집단 지성을 발현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강력한 도구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난 지금, 소통에 대한 그의 핑크빛 전망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되레 선선히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언뜻 분노가 서려 있다. 주제가 무엇이든 그들과의 논쟁은 늘 평행선이었고,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려면 항상 '너도 옳고, 나도 옳다'며 두루뭉수리 대화를 끝내야 했단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서로 다른 현실에서 소통 방식에 대한 고민은 지엽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몇 해 전 어느 국회의원이 시내 버스 요금을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70원"이라고 답했다. 그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그 사건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며 발끈했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평생 서민의 삶을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거다.
"그에겐 아무 죄도 없어요. 평생 시내 버스 한 번 탈 일 없는 사람들도 국민일진대,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인 거죠. 그런 그에게 투표하고선 국회의원 자격 운운하는 서민들이 바보 아닐까요? 먹을 빵이 없다고 외치는 백성들에게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쩌면 자신이 왜 단두대에 올라야하는지를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세기 전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낡은 명제가 만고불변의 진리일 수 있다는 생각을 그는 대학에 와서 처음 해봤다고 했다. 사뭇 다른 '존재'들이 모인 대학은 각자도생의 취업 학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학문의 공동체는커녕 더 이상 상아탑이나 지성의 요람이라는 상투적인 소개 글조차도 사용하기 참 민망한 상태라는 것이다.
대학에 와보니 그제야 자신의 중고등학교 시절이 보이더라는 그는, 이미 '예견된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과거 수월성 교육이랍시고 고등학교 서열화를 부추길 때부터 능히 예상할 수 있었던 바다. 그땐 입시 준비에 '올인'하느라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막상 대학에 와보니 그것이 얼마나 비교육적이고 반사회적인 정책이었는지 깨닫게 됐단다.
그의 말마따나, 고등학교 서열화는 '특별반'이나 '심화반'으로 대표되는 학교 내부의 서열화를 가져왔고, 중학교의 학력 경쟁을 부추겼다. 이는 온존한 학벌 구조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명문대인지 아닌지 정도로 나눴지만, 이제는 'SKY,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을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무슨 주문처럼 외고 있다.
극소수가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디스토피아
어릴 적부터 섞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등급'을 나누고, 그것이 유일한 '성취'라며 가르쳐온 결과, 대학에 입학하기 전 이미 아이들의 머리는 굳어져버렸고, 가슴 또한 싸늘히 식어버렸다. 그렇게 '물과 기름'처럼 살았고, 또 살아갈 그들의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는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지역과 세대 갈등도 거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와 만난 날, 이재협 서울대 로스쿨 교수 연구팀이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논문이 발표돼 화제가 됐다. 로스쿨과 사법고시 모두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요지다.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을 받았던 로스쿨에 비해, '희망 사다리의 대명사'라던 사법고시 역시 도진개진이라는 것이어서, 사법고시 존치를 외쳐온 이들이 머쓱하게 됐다.
그는 신문에 난 기사를 읽었다면서, 로스쿨이냐 사법고시냐의 선택에 매몰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연구팀은 기득권 재생산의 수단으로 전락한 법조인 양성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볼 때가 되었다는 걸 알려준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극소수 그들의 생각이 우리 사회의 상식을 대표하게 될 '디스토피아'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얼마 전 '지록위마' 판결에서 보듯, 솔직히 요즘 법관들 대놓고 '속 보이는' 판결을 내놓잖아요.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판결들이 '소신'의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게 될 거라 생각해요.
로스쿨이든 사법고시든 '다른 별에서 온' 이가 자자손손 우리 사회의 '생사 여탈권'을 쥐게 될 테니 말이에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법조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 문호를 개방할 리 만무한 마당에, 로스쿨이니 사법고시이니 떠들어대는 이야기는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격'이죠."
개천에서는 용이 안 나오는 거죠.
어렵게 서울대 입학한 일종의 똑똑한 학생들조차 계급적 차이를 넘지 못 하고
용이 아닌 이무기가 되는 게 대한민국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