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물신숭배’ 비판
남미 순방서 수차례 강도높게 질타
“인간의 얼굴가진 경제모델” 촉구
원주민에겐 식민시대 교회잘못 사과
“돈은 ‘악마의 배설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대 세계 자본주의의 물신숭배 풍토를 다시 한번 강도 높게 비난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모델”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지난 5일부터 일주일 동안 남미를 순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일 볼리비아에서 4세기 로마 주교 성바실리우스의 말을 빌려, 물신숭배의 대상이 된 돈을 ‘악마의 배설물’로 비유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런 표현은 오늘날까지 ‘빈자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12세기 수도자 성프란치스코가 즐겨 인용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남미(아르헨티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에 즉위하면서 로마가톨릭 2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서 지난 3월에도 이탈리아 협동조합연합 회의에 참석해 “사람이 돈을 숭배하면 결국 돈의 노예가 될 것”이라며, “돈은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경계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 파라과이 방문길에서도 세계 지도자들에게 “인간의 생명을 돈과 이윤의 제단에 갖다바치는 정책을 철폐하라”며 “돈에 대한 탐욕의 체계는 단지 나쁜 것을 넘어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교묘한 독재”라고 질타했다. 그는 “식탁에 빵을 놓는 것, 아이들의 머리 위에 지붕을 만들어주고 교육과 보건을 제공하는 것, 이런 것들이 인간 존엄성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가톨릭대의 스티븐 슈넥 가톨릭연구소장은 “교황의 발언은 통상적인 신학이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외치는 함성”이라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11일(현지시각) 파라과이 아순시온 외곽의 한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연설한 프란시스코 교황이 한 어린이한테서 받은 편지를 손에 든 채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각) 파라과이 아순시온 외곽의 한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연설한 프란시스코 교황이 한 어린이한테서 받은 편지를 손에 든 채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교황은 볼리비아 방문 첫날인 9일엔 원주민 풀뿌리운동 활동가들과 만나 유럽의 남미 식민지배 시절 가톨릭교회의 잘못을 사과했다. 그는 “이른바 ‘아메리카 정복’ 기간에 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겸손하게 용서를 구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원주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교황의 발언에 화답했다. 원주민그룹의 한 지도자인 아돌포 차베스는 <에이피>(AP) 통신에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분에게 우리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라며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힘차게 새로운 시작을 할 때”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78살의 고령에다 10대 때의 질환으로 한쪽 폐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해발 3000~4000m에 이르는 남미 고산 지대의 순방을 별 탈 없이 소화해냈다. 수행원들은 만일에 대비해 휴대용 산소탱크를 준비했으나 교황은 이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사진 카아쿠페/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