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연구원이 토요일(1일) 오전 10시쯤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보도자료 제목입니다. 이 보도자료를 두고 노동계와 노동부가 설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왜 자료 배포자인 노동연구원은 뒤로 빠지고 노·정이 전면에 나서게 됐을까요.
국책연구기관인 노동연구원은 노동리뷰, 노동정책리뷰, 국제노동브리프 등 정기 간행물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자료를 낼 때 따로 보도자료를 배포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노동연구원이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여기에다 보도자료 내용이 ‘뜨거운 감자’이기도 합니다. 직무능력사회 정착을 위한 핵심적 과제로서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인 인사관리라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노동부가 8~9월에 발표할 일반 해고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연구원은 “최근 판결과 판정례를 중심으로 공정한 인사평가에 따른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인사관리의 필요성 및 이를 위한 과제를 검토하겠다”며 세 가지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회사가 ‘저성과자’로 규정한 노동자를 퇴출한 것이 정당한지 법원, 노동위원회 등이 판단을 내린 내용들입니다.
첫 번째 사례는 현대자동차 사무직입니다. 현대차는 2009년 초 직무능력 부진자 등의 직무능력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 ‘역량 향상 프로그램’(PIP)을 도입해 추진했습니다. 최초로 이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91명 중 ㄱ씨는 2012년 2월 해고처분됐습니다. 그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지만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역량 향상을 위한 교육이 실시됐지만 역량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두 번째 사례도 2011~2013년 인사평가에서 낮은 고과를 받은 뒤 역량 향상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결국 해고된 경우입니다. 프로그램을 마친 ㄴ씨는 지난해 평가에서도 최하위 고과를 받아 지난 1월 대기발령 조치됐습니다. 이후 ㄴ씨를 원하는 부서가 없어 지난 3월 해고됐습니다. 그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위원회는 “회사가 적절한 역량 향상 기회를 줬다”는 점 등을 들어 해고 정당성을 인정했습니다.
세 번째 사례는 KT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례입니다. 2002년 민영화 이후 인건비 감축 방안을 찾던 KT는 2005년 명예퇴직 거부자, 민주동지회 회원, 114 외주화 당시 전출거부자 등 1002명을 부진인력(C-Player) 대상자로 선정했습니다. 회사는 이후 고과연봉제를 2009년 도입하면서 퇴직하지 않고 남은 부진인력 대상자 401명에게는 의도적으로 낮은 인사고과를 줬습니다. 특히 강모씨(59) 등 전·현직 KT 직원 6명은 모두 최하등급인 F등급을 받아 2010년 기준 연봉이 1%씩 삭감됐습니다. 이에 강씨 등은 “2005년 부진인력 대상자들에 대한 사실상의 제재로서 이뤄진 인사고과이므로 부당하다”며 임금 삭감분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15일째 서울 여의도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동만 위원장을 만나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노총 제공
노동연구원은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한 뒤 이렇게 결론을 냈습니다. “직무 부적합이나 직무능력 부진 그 자체로 해고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직무 부적합이나 직무능력 부진을 이유로 한 해고는 공정한 인사평가에 따른 합리적 인사관리가 실시된 이후 최후의 수단으로 실행되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계는 노동연구원 자료가 사실상 일반 해고 가이드라인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형태로 나왔지만 기업들은 사실상 노동부가 제시하는 기준이라고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양대노총은 2일 일제히 성명을 냈습니다. 민주노총은 노동연구원이 왜 지금 이 시기에 발표를 했는지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더 쉬운 해고 제도, 즉 일반해고제 도입의 명분을 쌓고 사회적 분위기를 몰아가기 위한 선전수단이다.” 한국노총은 사실상 일반 해고 가이드라인을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린 정부에 협상 의지가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말로는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말하지만 실은 노사정위 복귀를 원치 않으며 이를 핑계삼아 강행처리를 하고 그 책임을 노총에 전가시키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쉬운 해고가 아니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다만 노동연구원을 통해 정부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했습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근로자의 직무능력 향상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능력중심의 합리적인 인적자원관리방식이 필요하므로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현장 사례와 판례 등을 제시해 노사가 채용·능력개발·근로계약 해지 등 인사관리 전반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습니다. 노동부는 일반 해고 가이드라인의 상당 부분을 발표해버린 셈이 됐습니다. 노동계에선 벌써 이런 이야기 나오고 있습니다. “협상은 무의미해졌다. 만약 노사정이 합의해서 쉬운 해고는 없다고 선언해도 국책연구기관이 발표한 연구자료를 토대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기준을 세우면 그게 가이드라인이지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