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이요? '쉰세대'에겐 먼나라 얘기죠"
[세종=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대기업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병준 씨는 올해 49세다. 김 씨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조만간 임금피크제 도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년이 60세로 늘어나는 대신 55세가 되는 해부터 임금을 삭감한다는 얘기가 사내에서 돌았다. 그러나 김 씨는 회사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올해 승진 심사에서 한 차례 탈락한 그는 50세가 되는 내년에도 임원이 되지 못하면 퇴사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최영수 씨는 올해 상무로 승진했다. 29살에 입사해 21년을 일한 끝에 50세가 되는 해 임원이 됐다. 그러나 최 씨의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임원은 1년마다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퇴사해야 한다. 실제로 그가 다니는 회사에는 1~2년짜리 임원이 수두룩하다. 50세 전후의 직원들을 빨리 내보내기 위해 회사가 승진 인사를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대다수 기업의 정년은 58세다. 하지만 정년을 채우고 회사를 나가는 사람은 드물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다. 정년까지 일한 비율은 7.6%다.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권고사직, 명예퇴직 등에 따른 조기 퇴직 비율은 16.9%다. 50대 직장인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김 씨는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는 것은 법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대부분의 50대 회사원들은 ‘별(임원)’을 달지 못해 그만두거나 위아래의 눈치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임원은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상무로 승진하지 않고 부장 직함으로 오래 다니고 싶어하는 직원들도 많다”도 말했다.
상무 등 초임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0.57%로 나타났다. 임원이 되더라도 이후 전무(0.11%)에서 부사장(0.05%), 사장(0.02%)으로의 승진확률은 직급마다 절반 정도씩 낮아졌다. 어렵게 임원이 되더라도 5년 남짓 일하다 정년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CEO스코어가 10대 그룹 96개 상장사 임원 중 2015년도 정기인사에서 퇴임하고 자사주를 매도한 27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퇴임 임원의 평균 나이는 54.5세, 재임기간은 5.2년으로 조사됐다. 직급별 평균 퇴직 연령은 상무가 53.5세로 가장 낮았다. 다음으로 부사장이 55.8세, 전무가 56.2세로 부사장보다 평균 퇴직 연령이 높았다. 사장은 58.7세, 부회장은 63세였다. 경영자가 되지 않는 한 임원이 되더라도 55세를 전후로 퇴사한다는 얘기다.
◇정년 60세는 그림의 떡..기업 34%는 정년퇴직자 전무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 60세가 법으로 의무화되지만 유명무실한 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직장인이 드물기 때문이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283개사를 대상으로 ‘정년제 운용과 정년 규정’을 주제로 설문 조사한 결과(2013년 기준) 61.5%가 정년제를 운용하고 있었으며, 규정된 정년은 평균 58세로 조사됐다. 그러나 정해진 정년까지 일하고 퇴직한 직원은 전체 퇴직자의 22%에 불과했다. 특히 정년까지 일하고 퇴직한 직원이 거의 없다는 응답이 전체의 34.5%로 가장 많았다.
직원들의 퇴직 나이는 평균 50대 초반대로 규정 정년보다 크게 낮았다. 기업 유형별로는 공기업(56세), 중소기업(51세), 대기업(50세), 외국계기업(50세), 중견기업(48세) 순이었다. 공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직장인들이 50세를 전후해 회사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부의 고용대책은 청년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50대 장년층이 기댈 곳이 없다. 정부는 지난해 ‘일하는 장년, 활력과 보람있는 노후’라는 슬로건으로 ‘장년 고용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고용 안정보다는 창업 활성화가 주요 내용이어서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도영 고용노동부 고용문화개선정책과장은 “최근 대통령 담화 등을 통해 청년고용이 강조되고 있지만 고용부에선 중·장년층의 전환형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 기존 장년고용 관련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용익 (yoniki@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