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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당신의 산재를 숨기는 이유

시사인 2015.09.10 06:52 조회 수 : 1954

회사가 당신의 산재를 숨기는 이유

7월29일 오후 1시50분께 충북 청주의 한 화장품 제조업체. 이 회사 직원 이 아무개씨(35)가 일하다 지게차에 치였다. 1분 뒤 119에 신고가 접수됐다. 구조대가 신고 7분 만에 회사 입구 도로까지 진입했다. 그런데 회사는 구조대를 돌려보냈다. 이씨를 30분 거리에 있는 지정 병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일반 승합차에 실렸다가 다시 지정 병원 구급차로 옮겨졌다.

하지만 사고 발생 1시간이 지나 도착한 지정 병원은 정형외과 전문이었다. 응급치료를 받지 못했다. 근처 종합병원에 옮겨졌을 땐 이미 출혈이 심해 장기가 손상된 상태였다. 오후 4시45분께 이씨는 숨졌다.

↑ ⓒ연합뉴스 : 사고 현장에 119를 부르지 않은 사례는 '청주 지게차 사고'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공사장 사고 때도 그랬다(위).



경찰은 애초에 이 사건을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유족이 회사 대표와 지게차 운전자 등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이어 회사가 119를 돌려보낸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살릴 수 있었던 목숨'이라는 공분을 샀다. 경찰은 현재 고소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은 이 업체가 숨겨온 산업재해 3건을 더 찾아냈다.

산업 현장에서 119를 부르지 않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조 아무개씨가 7m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추락했을 때도 지정 병원 구급차를 먼저 불렀다. 9분 뒤 지나가던 시민이 119에 신고했다. 지정 병원이 조씨를 종합병원으로 보냈지만, 조씨는 과다출혈로 숨졌다.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공사장에서 김 아무개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을 때도 회사 직원은 119 대신 거리가 더 먼 지정 병원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는 사고 22분 만에 도착했다. 결국 김씨도 숨졌다.

업체들이 119 대신 지정 병원을 고집하면서 출동과 치료가 늦어져 사람이 죽는다. 수많은 사업장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이다. 현재의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제2, 제3의 '청주 지게차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고가 나도 업체들이 119 대신 지정 병원 구급차를 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노동부가 산재 은폐를 인지하는 방법 중 하나가 현장에 출동한 119 기록이다.' 16년째 울산 지역 산재를 들여다본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이 말했다. '나중에 회사가 산재로 인정하지 않거나 목격자가 없어도, 다친 직원이 이송 일지를 확보할 수 있다면 산재 입증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기록이 남으면 산재를 숨길 수 없으니 119 신고를 꺼린다는 얘기다.

산재 기록 적을수록 보험료 싸진다

119 대신 업체들은 자사 직원을 전담해서 치료하는 지정 병원을 선호한다. 병원이 초진 기록에 산재 단서를 남기지 않는 데 협조하기 때문이라고 현 사무국장은 말했다. '사고가 나면 업체가 지정 병원에 전화한다. 누구 갈 테니 잘 부탁한다고. 업체 관리자가 병원에 동행한다. 진료를 받을 때 '어떻게 다쳤느냐'고 의사가 물으면 다친 노동자가 답할 새도 없이 '집 계단에서 넘어졌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환자가 일하다 다쳤다고 적어달라고 사정해야 마지못해 적어주는 의사도 있다. 환자를 받는 지정 병원과 업체의 유착 관계가 공고하다.' 이들 지정 병원은 대부분 신경외과나 정형외과다. 2차 의료기관도 있지만 1차 기관인 개인병원이 많다. 머리를 다쳤거나 피를 많이 흘려도 응급치료가 쉽지 않다.

업체들의 지정 병원 선호에 관해 정말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대부분 업체는 산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돼 있다. 보험료를 납부한다. 그렇다면 사고가 났을 때 보험처리를 하는 게 이익이지 않을까? 그러려고 보험에 가입하는 게 아닌가?

↑ ⓒ시사IN 신선영 : 산업안전감독관 한 명이 약 6900개 사업장을 담당한다. 위는 한 조선소의 작업장.



문제는 간단치 않다. 자기 회사 직원이 일하다 다쳤을 때 기업의 선택을 상상해보자(위 <그림> 참조).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면, 직원 치료비를 보험금 수령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서 산업안전감독관이 나와 사업장의 법 위반 사항을 지적한다. 작업 환경을 개선할 것을 명령하는데, 개선에는 돈이 든다. 경영이 어려워진다. 물론 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도 물어야 한다.

돈만 드는 게 아니다. 하청업체 사이에는 원청업체 계약을 따내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원청은 나름의 평가 기준에 따라 산재가 발생한 업체에 불이익을 준다.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 무엇보다 원청은 노동부에서 나와서 자사를 감독하고 사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싫어한다. 하청업체가 무언의 압력을 느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산재보험으로 처리했을 때의 손해는 크고 구체적이다.

산재를 숨기거나 거짓으로 보고했다가 들키면 처벌받지 않을까? 받기는 하는데, 과태료 1000만원이 최고다. 그나마도 첫 회는 300만원이다. 이마저도 '개선'된 것이다. 경고로 그치는 사례도 많았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적발된 산재 미보고 사례 7491건 중 6580건(87.8%)이 경고 조치만 받았다(2014년 국정감사 자료, 심상정 의원실). 산재 처리를 하지 않을 경우 얻는 이득은? 고용노동부 감독관이 나올 일도 없고, 따라서 개선 사항을 지적받거나 과태료를 물 일도 없다. 원청도 사고 발생 사실을 모르거나 최소한 문제 삼지 않는다. 눈치를 보거나 재계약을 걱정할 일이 없다.

그뿐 아니다. 개별실적요율제라는 게 있다. 사고가 나면 보험료를 올리고, 사고가 나지 않으면 보험료를 깎아주는 제도다. 기록에 남는 산재사고가 적을수록 보험료가 싸진다. 2012년 한 해 5만8070개 기업이 총 1조1376억원을 할인받았다(2014년 국정감사 자료, 은수미 의원실). 건설업체의 경우 정부 발주사업 경쟁 때 산재가 적을수록 가산점을 받는다(최대 2점). 하청업체가 원청으로부터 계약을 따낼 때도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았을 때 얻을 이익이 손해보다 크고 구체적이다. 기업들이 '들키면 과태료 내고 말지'라고 판단하는 이유다.

개별실적요율제나 가산점제도, 원청의 하청업체 평가 기준 등은 모두 산재가 적게 발생한 업체에 이익을 줘서 산재 예방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산재 은폐가 가능하고, 은폐하는 게 실제로 이익이 되는 구조에 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현재 산재 시스템이 '커닝이 만연한데 선생님이 감독은 안 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상을 주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유 노무사는 원청·하청 불평등 구조와 더불어 산업안전 인력 문제를 산재 은폐의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안전감독관 한 명이 담당하는 사업장 수는 약 6900개다. 사실상 상시 감독이 불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에만 파견을 나간다. 위법 사항이 무더기로 적발된다. 본보기로 과태료를 물린다. 원청도 싫어한다.

사업장 처지에서 대안은 산재가 발생한 것을 고용노동부도, 원청도 모르게 하는 것이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만 않으면 그 모든 게 가능하다. 산재 대신 업체 비용으로 치료비 등을 처리하기로 노동자와 합의를 보는 것을 '공상 처리'라고 부른다. 2014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산재를 경험한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 125명 중 70명(56%)이 하청 비용으로 합의 처리(공상 처리)했다. 개인 부담으로 의료보험 처리한 경우도 35명(28.0%)으로 적지 않았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노동자의 협상 능력에 따라 합의금이 천차만별이다. 직원이 위축되거나 업체가 버티면 개인 부담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고 답한 사람은 9명(7.2%)에 불과했다.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각종 조사에서 산재로 처리하지 않는 비율은 54~93%로 매우 높다. 일하다 다쳤지만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한 노동자 수를 2010년 기준 한 해 최대 162만명으로 추정한 연구도 있다(2012년 국회예산정책처 연구용역 보고서).

감독 기능 마비…은폐 규모 제대로 파악 못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재가 발생해도 보고하지 않는 게 현장에서는 흔한 일이다. 감독 기능 마비는 은폐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고용노동부는 2008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산재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례 7978건을 적발했는데, 이 중 건강보험공단이 파악한 부당이득금 환수자 명단을 넘겨받아 추적한 게 60% 이상을 차지한다(심상정 의원실). 사업장 감독으로 밝힌 건 452건, 신고센터로 밝힌 건 19건에 그친다.

산재 은폐의 고리를 끊으려면, 정직하게 신고하면 '벌칙'을 받고 은폐하면 '보상'을 받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를 위해 '선보장 후평가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현재는 노동자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압력과 회유, 협박이 가능하다. 이 대신 처음 진료하는 의사가 산재로 분류하면 일단 산재보험 처리를 하고, 부정수급 등에 대해선 나중에 필터링하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감독관 수를 대폭 확충해 산재 은폐 사례를 적극 발굴하고, 은폐 적발 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성규 노무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산재 은폐로 인한 경제적 이익과 손실을 비교하게 되는데, 현행 구조는 산재 은폐 시 심각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신호를 주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산재 은폐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산재 은폐가 드러났을 때 입게 되는 경제적 타격이 어마어마하게 커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혜원 기자 /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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