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2일. 무역협회 조찬강연에 나선 이석채 KT 회장은 작심한듯 삼성전자에 직격탄을 날렸다. 삼성전자(005930) (1,066,000원▲ 0 0.00%)스마트폰 ‘옴니아’를 두고 ‘홍길동폰’이라 일갈한 것. 사연은 이렇다. 삼성전자는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SK텔레콤(017670) (151,500원▲ 1,500 1.00%)·LG유플러스(032640) (6,870원▼ 50 -0.72%)용 제품에만 각각 T옴니아·오즈옴니아라는 친근한 이름을 붙여줬다. KT용은 ‘쇼옴니아’ 대신 ‘SPH-M8400’이라는 딱딱한 모델명을 그대로 사용해 출시했다. 이 회장은 “쇼옴니아라는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처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과 비슷하다”며 삼성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는 대상이 삼성전자라 할지라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평소 비즈니스맨 보다 정치인 같다는 오해를 산 것도 그의 거침없는 언변 탓이다.
◆ ‘아이폰 쇼크’, 국내 IT 업계에 충격요법
이 회장의 저돌적인 스타일은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2009년 1월 취임부터 지난 3년간 그의 행보는 “KT가 너무 빨리 진화해 어지러울 정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급진적이었다.
지금은 한 몸이 된 KT와 KTF 합병안은 이 회장 취임 1주일 만에 이사회에서 전격 통과됐다. 합병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이사회 승인 2개월 만에 정부 허가 획득, 그 뒤 3개월 후인 5월 마무리됐다. SK텔레콤 등 경쟁사들의 반발이 컸지만 그는 “KT-KTF 합병이 뭐가 문제냐”며 개의치 않았다.
특히 2009년 연말 KT가 도입한 애플 아이폰은 ‘아이폰 쇼크’라는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국내 휴대폰과 통신업계에 파문을 던졌다. 아이폰이 들어오자 마자 삼성전자·LG전자는 스마트폰 국내 시장을 고스란히 애플에 내줬다. 업계는 그동안 소프트웨어 투자에 게을렀기 때문이라며 반성론을 쏟아냈고,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삼성전자가 옴니아를 놓고 이 회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것도 KT가 아이폰을 도입하면서 안방 시장을 내주게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되돌아 보면, 2009년 말 아이폰이 상륙한 덕분에 늦게나마 국내 업체들이 스마트폰 시장에 대비할 수 있었다. 아이폰 쇼크가 일종의 충격 요법이 돼 전화위복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석채 회장은 아이폰 도입 전 “제조사와 콘텐츠 업체들은 아이폰에 자극을 받아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 앱스토어 등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아이폰 상륙 만 2년이 된 현재, 그의 예언은 맞아들어가는 중이다. 아이폰이 들어왔을때 속절없이 스마트폰 시장을 내줬던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들어 처음 애플을 판매량에서 눌렀다. 4분기에는 애플과의 스마트폰 판매량 격차를 더욱 확대할 전망이다. LG전자 역시 과거 ‘초콜릿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팬택은 일반 휴대폰(피처폰) 회사에서 고급 스마트폰 회사로 완전 탈바꿈했다.
윤정호 로아그룹 이사는 “아이폰이 처음 상륙했을 때는 국내 휴대폰 업체들의 위기로 인식됐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충격 덕분에 스마트폰 시장에 안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 손정의도 감탄한 클라우드 기술
이석채 회장이 아이폰 도입과 함께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분야가 ‘클라우드’다. 이 회장은 지난해 4월 조직개편을 통해 CEO(최고경영자) 직속으로 ‘클라우드 추진본부’를 설치했다. 클라우드 사업 전략을 진두지휘하기 위해서다. 이후 KT 클라우드 전략에 속도가 붙었고, 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경쟁사에 한 발 앞서 관련 시장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극찬했다는 천안 클라우드 데이터센터(CDC)는 클라우드 추진본부가 주축이 돼 건설했다. 손 회장은 천안 CDC를 둘러본 후 KT와 클라우드 전문 합작사를 설립키로 결정했다. 손 회장은 이 회장에게 “김해 CDC를 천안 CDC만큼만 지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석채 회장은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는 일반 컴퓨터에 비해 성능이 뒤떨어지지만 클라우드 기술을 만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