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석채 회장이 등장한 이후 KT는 ‘진짜 1등’을 꿈꾼다. 요즘 KT 임원들을 만나면, “유선 전화가 천덕꾸러기라고요? 아닙니다. 유무선 통합 시대에 유선이야말로 최고의 무기이지요”라고 진심으로 열변으로 토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올레(olleh KT)’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SKT의 젊은 이미지 못지 않다.
직원들은 ‘이석채 KT 3년’에 대해 “KT가 SKT를 넘어 새로운 통신 역사를 쓸 수 있다”며 가능성을 입 모아 말하면서도 “앞만 달리고 온 지난 3년에 대한 피로감도 솔직히 커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 SKT 제친 어닝 서프라이즈
실제로 이석채 회장은 KT 사령탑으로 등장한 후 2년 만에 ‘깜짝 실적’으로 SKT를 위협했다. KT는 2010년 매출 20조2335억원, 영업이익 2조53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으로 SKT(2조350억원)를 넘어선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KT의 영업이익은 분기마다 SKT보다 최소 300억원에서 최대 3000억~4000억원까지 적었다.
KT 순이익 증가는 KT와 KTF 합병 효과와 아이폰의 선제적 도입 효과가 컸다. 아이폰 도입 이후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무선데이터 수익을 늘려 KT는 2004년 이후 처음으로 20조-2조(매출 20조, 영업이익 2조) 클럽에 들었다.
당시 SKT와 LG유플러스 등 경쟁사들은 “13년 전 장관 재직 시절, 유선 시장의 지배력이 무선으로 전이된다며,KT에 자회사 KTF를 만들라고 압박했던 주인공이 이제 와서 말을 바꾸고 KT와 KTF 합병을 주도해 이익을 확대했다”면서 반발했지만, 이 회장과 KT는 “유무선 통신 융합 시대로 시장 환경이 바뀌었다”고 대응했다.
이런 갑론을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KT 내부 직원들의 인식과 태도 변화다. 유무선 통합 인프라를 기반으로 무장한 KT 임직원들이 ‘역시 통신 1등은 KT’라는 비전을 재설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보는 SKT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SKT는 노조위원장이 ‘자살소동’을 벌이는 등 노조가 강력히 반발했음에도, 지난 10월 조직 일부를 떼내 SK플래닛이라는 이름으로 분사시켰다. KT의 공세에 위기감을 느낀 SKT가 신 사업 발굴을 명목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 2011년 3,4분기는 실적 부진, 혁신의 열매는 여전히 ‘예약 중’
그렇다고 이석채호 3년이 완벽하게 KT의 변신을 일궈낸 것은 아니다. 2011년 3분기 찾아온 ‘어닝쇼크’에 가까운 실적이 이석채식 개혁 드라이브가 여전히 ‘투자 단계’에 머물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지난 3분기 KT 영업이익은 5163억원으로 2010년 같은 기간보다 12.6% 감소했다. 매출액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6.2% 감소한 4조9922억원이었다. 당기순이익은 2557억원으로 작년보다 무려 40.7% 감소했다. 증권가에선 신규 서비스에 따른 마케팅 비용 증가로 4분기에도 부진을 점친다.
KT 주가 움직임도 크지 않다. 2009년 1월 15일 이 회장이 당시 KT 사장으로 취임할 때 주가는 3만9000원대였다. 지난 2일 KT 종가는 3만7350원이다. 그러나 SK텔레콤 주가가 같은 기간 21만원 대에서 지난 2일 15만원으로 추락한 점을 감안하면, KT는 선방한 편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석채호는 아이폰을 도입하고 3W(WiFi, WCDMA, Wibro)망에 대규모 투자했다. 분당·서초·광화문·고양 등 11개 스마트워킹 센터를 만들어 스마트워크 사업에도 시동을 걸었다. ‘유클라우드’ 서비스로 클라우드 사업의 선봉장 역할도 자처했다.
이런 투자가 실제 열매로 이어지고, 실적으로 검증받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 맹렬한 개혁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직원들
KT 임직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이석채 회장이 없었다면?’이라고 가정하고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통신사업이 구조조정과 사업전환을 맞이한 상황에서 개혁 드라이브는 꼭 필요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직 인수위와 청와대 출신의 낙하산 인사, 5000명이 넘는 고강도 구조조정 속에서 임원 연봉 인상 등은 개혁과정의 아쉬운 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스템에 나온 KT 사업보고서를 보면, 2009년 이석채 회장이 취임하고 나서 KT는 새로운 인물들을 임원 자리로 불러 들였다. 행정고시 출신과 17대 대통령 인수위원회 출신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아이폰 도입 등 이석채 회장의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가 그의 정치적 힘에 기반을 뒀던 만큼 ‘정치적 이유’에서 안배하거나 배려야 인사들이 적지 않았던 셈이다.
실제로 10년 전 민영화한 KT가 관료 출신인 이 회장이 오면서 다시 공적인 역할론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KT가 국내 SW업체를 키우겠다며,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여러차례 강조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KT 한 임원은 “예전 KT처럼 산간오지에 망을 어떻게 보급할까와 같은 ‘보편적 서비스’에 대해 논의할 때는 공기업 분위기를 풍기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60대 중반인 회장께서 격주 토요일마다 임원들과 함께 토론을 이어가며 신규 서비스에 대해 탐구하는 데서 열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현재 눈여겨 볼 대목은 KT의 복수노조의 움직임이다. 지난 7월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된 후 KT와 KT 계열사에서는 신규 노조가 잇따라 설립됐다. KT 내부에서 민주노총 산하와 손잡은 옛 강성 노조의 부활(민주동지회)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사람도 있다.
현재 KT에서는 노조 선거가 한창이다.
한 임직원은 “이석채 회장을 지지하는 내부 층이 두텁다”면서도 “엄청나게 달려온 지난 3년에 대한 숨 고르기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인사에 대한 불신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에 하나 가능성이지만, 임원과 일반 직원의 차별적인 개혁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면 노조에 기대어 피로감을 해소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