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초고속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KT는 "스마트TV의 과도한 트래픽 사용으로 인해 인터넷 이용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이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할 경우 전력 조절 실패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듯 인터넷도 끊겨 IT 생태계 자체가 공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액제라고 하지만 남 생각하지 않고 트래픽을 마구 써버리는 스마트TV의 이기주의적 행태보다는 사용자의 권익을 걱정하는 통신사의 논리가 더 와 닿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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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스마트TV 바다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삼성 스마트TV는 인터넷을 통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전용 앱을 제공하며 웹 서핑도 가능합니다. KT의 망 사용료 요구에 LG는 협상 의지를 보였으나 삼성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 제한 문제는 단순히 통신사와 스마트TV 제조사들만 연관된 싸움이 아닙니다. 인터넷은 모든 산업의 기반 시설이며 음악, 사진, 책, 동영상과 같은 콘텐츠 유통망인데다가 정보 소통의 도구로써 표현의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까지 엮여 있습니다. 이제 인터넷 없이는 사회가 작동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 연결돼 있습니다. 때문에 언론 자유, 검색 공정성, 정보 접근권, 망중립성 등 인터넷의 활용과 통제에 관한 다양한 층위의 논쟁이 존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다루기에는 벅차기 때문에 우선 인터넷의 산업적 측면, 그 중에서도 국가경쟁력이란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통신사의 주장대로 인터넷 망에 무임승차해 트래픽을 유발하는 스마트TV를 제재할 것인가? 아니면 소비자의 권리와 스마트TV 경쟁력을 위해 통신사의 희생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 타협하여 상생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사실 현장에서는 세 가지 선택 모두 쉬운 것이 아닙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업체들에게 국가 경쟁력을 기르기 위한 대승적 선택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강제할 선한 손의 존재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가장 적절할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의 사태와 완벽하게 동일했던 한 사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Mncast는 누가 죽였는가?
인터넷 속도가 증가하면서 텍스트 위주의 서비스에서 이미지가 추가된 좀 더 화려한 콘텐츠가 주를 이루게 됐습니다. 그 후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됨에 따라 동영상 서비스까지 가능하게 됐습니다. 유씨씨(UCC)라 불리는 동영상 위주의 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부하던 한국에서도 경쟁적으로 유씨씨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상 새로운 서비스는 수익 모델보다는 브랜드 인지도와 사용자 수 확보에 매달리기 마련입니다. 동영상 업체들도 이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끝없이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동영상을 보관하기 위해 저장장치를 마련하고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서버도 다량으로 갖췄습니다. 속도와 성능에서 앞서나감으로써 인지도를 높여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이익은 나중에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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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업체들 한 때 유씨씨의 분위기를 이끈 대표 사이트들이었으나 과도한 트랙픽 요금으로 인해 파산하거나 수익을 앞세우는 사이트로 변해 더 이상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하는 서비스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성숙하면서 소위 네트워크 효과라고 하는 쏠림 현상이 일어나 업계 1, 2위를 다투는 업체들이 점유율을 높였으나 과도한 망 사용료로 인해 아무리 노력해도 수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통신사들은 텍스트 위주의 서비스용 요금제를 막대한 트래픽을 사용하는 동영상 서비스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요금 폭탄을 안겼지만, 이 업체들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동영상 업체들은 소위 그리드 컴퓨팅 방식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한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동영상을 보는 PC가 있으면 먼저 동영상을 내려 받은 PC가 다른 PC에게 동영상을 전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통신사의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서비스가 가능해 망 사용 요금을 절감할 수 있었지만, 사용자의 PC를 악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영상 업체들은 그리드 컴퓨팅이 가능하도록 사용자 PC에 엑티브 엑스 방식의 전송 프로그램을 임의로 다운로드 했는데 이것이 인터넷 속도를 떨어뜨리고 컴퓨터를 느리게 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사실상 업체가 사용자 PC에 바이러스를 깔아 놓은 것과 같았기 때문에 국내 동영상 업체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비용문제로 인해 국내 서비스는 업로드 파일의 용량을 제한함으로써 고화질도 불가능했습니다. 저비용으로 서비스를 원활히 하기 위해 그리드 기능이 포함된 전용 프로그램만 사용하도록 강제했습니다. 동영상은 자사 누리집에서만 볼 수 있을 뿐 다른 웹 페이지로 퍼갈 수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한국 내 서비스라서 저작권 위반뿐만 아니라 사이버 명예훼손 법 등의 검열로 인해 동영상이 임의로 삭제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턱없이 비싼 망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해 광고를 과도하게 노출하고,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전용 프로그램으로 비난 받고, 자사 사이트에서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브랜드 확산에 실패한 mncast와 같은 국내 업체들은 끝내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별 풍선이란 유료 사용료 개념을 정착시킨 아프리카 정도만 흑자에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에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며 제한적으로 운용하는 포털 정도에만 남았을 뿐 경쟁력을 갖춘 동영상 서비스는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신 사용자들은 검열이 없고 화질이 좋은 유투브로 넘어갔습니다. 유투브는 자체 누리집뿐만 아니라 타 누리집에서 유투브 동영상만을 노출시키는 것도 허용했기 때문에 점차 인터넷의 기본 동영상 플랫폼이 돼 갔습니다.
유투브의 경쟁력
이에 반해 유투브는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압도적인 사용자 수만큼이나 동영상 콘텐츠도 많이 쌓였습니다. 풀HD급의 최고급 동영상을 횟수 제한 없이 볼 수 있습니다. 내 누리집에 동영상이 필요할 때 유투브에 올리고 링크를 걸면 사용자들은 내 누리집에서 벗어나지 않고 유투브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특색 있는 동영상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파트너가 되면 광고 수익도 나눠줍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구글이 아무리 현금이 많다고 해도 풀HD 동영상을 무한정 전송하는 엄청난 망 사용료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요? 여기에 커다란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비밀일지도 모릅니다. 그 비밀의 이름은 바로 '망중립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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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투브 네트워크를 무료로 사용하는 유투브는 광고 수익 분배 방식으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하루 동영상 조회 40억 건을 돌파함으로써 이제 명실공히 전세계의 독보적인 동영상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망중립성이란 용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산자는 인터넷망을 무료로 쓸 수 있으며 지나가는 데이터 간섭 받지 않는다'라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 즉 콘텐츠 생산자들은 망 사용료를 내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검열 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든 마음대로 서비스로 만들 수 있고 인터넷 망을 무료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망중립성이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구글과 같은 미국의 인터넷 업체들이 망 사업자(이후 통신사)들과 싸워 얻어낸 것입니다. 구글은 자체 데이터센터를 짓고 무료로 인터넷 망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통신사들이 확보한 일반 사용자들 중에 구글 서비스를 원하는 사용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구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신사가 구글을 직접 연결해주지 않으면 사용자들이 구글에 접속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통신사를 우회하여 구글에 연결됩니다. 이렇게 되면 속도가 느리다고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통신사에 돈까지 지불해야 합니다. 통신사와 통신사끼리는 주고 받은 데이터량 차이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구글 때문에 접속료를 물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인기 있는 구글과 싸우는 것보다 무료로 연결해 주는 것이 오히려 통신사에게 이익이었습니다. 결국 통신사들은 콘텐츠 생산자들에게는 망 사용료를 요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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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저 광 케이블망 한국 통신사들은 유투브의 무료 망 사용료를 거부함으로써 막대한 국제 회선 사용료를 내고 있습니다. KT는 중국-미국 라인에 연결되어 속도가 빠르지만 SK와 LGU+는 지진으로 끊긴 일본-미국 라인을 이용하기 때문에 제 속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정확히 반대로 일이 진행됐습니다. 망 사용료 때문에 동영상 업체가 사라지자 한국에서도 유투브가 대세가 됐습니다. 구글은 속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에 서버를 두기로 하고 통신사에게 무료로 네트워크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국의 통신사들은 국내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게 망 사용료를 받는 관행에 방해가 될까 봐 유투브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현재 유투브는 한국에 동영상 서버를 두지 않고 있는데 이 때문에 유투브가 유난히 느려 통신사들이 사용자들에게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들은 유투브 접속으로 인한 국제 회선 사용료를 외국 통신사에게 물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 국제 회선료를 줄이기 위해서 통신사들이 스스로 유투브를 위한 캐시 서버를 갖춰 놨습니다. 국내 사용자가 한 번 본 동영상은 이 서버에 저장되므로 여러 사용자가 보더라도 추가의 국제 회선료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망 사용료 수익에 집착한 통신사들이 국내 동영상 업체들을 고사시킨 후 외국 동영상 업체를 위해 회선료를 지불하는 것도 모자라 자발적으로 그 업체를 위한 전용 서버도 갖추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망중립성을 확립한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는 막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전 세계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비용 걱정없이 서비스를 할 수 있고 조기에 손익 분기점을 넘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망을 무료로 사용하는 업체와 감당할 수 없는 망 사용료를 내야 하는 업체와는 애초에 경쟁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수익에 매달려야 하는 한국 서비스는 결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스마트TV도 죽일 것인가?
한국은 TV 강국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플랫폼인 스마트TV가 등장하면서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스마트TV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니가 몰락했듯이 한국의 TV산업도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스마트TV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서비스가 출현해 서로 경쟁해야 합니다. 하드웨어 중심의 스마트TV 플랫폼도 육성해야 하겠지만,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유통망도 활성화해야 합니다. 콘텐츠를 팔기 원하는 업체들이라면 어디든지 제한 없이 스마트TV 플랫폼에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콘텐츠 제작자를 우대해 양질의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한국만의 강점을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눈 앞의 자사 이익을 지키는 데만 관심 있는 통신사들이 이 모든 것을 막고 있습니다.
스마트TV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스마트 셋탑, 셋탑 내장형 스마트TV, 구글TV와 같은 플랫폼 업체, 넷플릭스처럼 브랜드로 승부하는 콘텐츠 유통망 등이 서로 경쟁 중입니다. 한국의 통신사들은 IPTV를 선택했습니다. IPTV는 가장 단순한 스마트TV 방식입니다. 전용망을 깔아 놓고 사용자를 모은 다음 이를 기득권화해 콘텐츠 유통망을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전용망 설비에 수조 원의 비용이 들지만 일단 망 구축을 하고 나면 독점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어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IPTV는 폐쇄적인 운영으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해 디지털 케이블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물리적 방송망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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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PTV 망 개방 IPTV는 통신사들이 각자 폐쇄적인 물리망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IPTV가 활성화되려면 이 망도 개방해야 합니다. 그래서 KT의 IPTV망에 LG의 셋탑을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IPTV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통업체를 끌어 들여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유료 콘텐츠 사용을 늘려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통신사들은 콘텐츠를 독점을 통해 IPTV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은 콘텐츠를 확보했느냐 하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확보한 업체가 더 많은 IPTV 점유율을 가지는 게임으로 변했습니다.
특정 업체의 IPTV를 선택한 순간 타 업체가 확보한 콘텐츠는 볼 수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인기 있는 몇몇 버라이어티 녹화 방송과 지나간 드라마를 빼면 IPTV에 볼 것이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입니다. 결국 케이블과 마찬가지로 IPTV도 공중파 생방송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됐습니다.
통신사들이 스마트TV를 견제하는 것은 경쟁력을 상실한 IPTV의 수익을 보전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큽니다. 공정한 경쟁이나 IPTV 망 개방을 통한 상생은 외면하고 망 중립성을 위반하면서까지 자사 서비스를 살리려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IPTV와 스마트TV는 잘 어울리는 서비스입니다. IPTV 전용망을 통한 실시간 방송을 스마트TV와 연계하고 IPTV용으로 확보한 주문형 비디오(VOD)를 스마트TV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익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확보해 해외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윈윈하는 방식을 통해 흑자 전환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통신사는 여태까지 함께 잘되는 방법을 택한 적이 없습니다. 통신사가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동안 국가 경쟁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구글과 애플과 같은 스마트TV 플랫폼 업체들은 각각 구글TV, 애플TV란 브랜드로 무장하고 글로벌 TV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승리하게 되면 TV 제품뿐만 아니라 동영상 유통망까지 장악될 것입니다. 경쟁력이 없어진 한국의 스마트TV 특히 IPTV는 결국 실시간으로 미국 드라마를 유통하는 채널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콘텐츠 경쟁력과 유통망을 뺏기고 나면 TV 브랜드 가치까지 잃게 되어 한국 기업들은 구글과 애플 같은 플랫폼 업체에 싼 값에 하드웨어를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망은 수출할 수 없다
통신사들은 스마트TV가 과도하게 트래픽을 사용할 경우 사용자이 피해를 입게 되고 인터넷 자체가 끊길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이 비용 절감에 나서고 마케팅 비와 배당을 줄이면서까지 망 증설에 나선다면 이런 말에 설득력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수익의 대부분을 마케팅에 쏟아 붓고 매년 2조 원 이상의 배당 잔치를 벌이는 통신사들의 행태를 볼 때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3G 사용자들이 낸 기본료로 4G 인터넷 망 구축을 하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망 구축 비용은 당연히 주주들의 투자를 통해 마련해야 합니다. 사기업에 불과한 통신사들이 자기들의 미래 사업을 위한 시설 투자비를 기존 사용자가 내는 관행이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본료로 망 구축 비용을 보전해 준 3G 사용자들이 4G로 전환할 경우, 이들이 낸 기본료만큼의 혜택을 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은 신규 사용자들을 위한 혜택만 있을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통신망이 국가 인프라 시설이라고 믿고 기꺼이 도와주려는 국민들의 애국심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더 이상 이런 애국심을 악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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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G LTE 전국망이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비싼 요금제로 팔리고 있는 LTE 통신 서비스. 음성 통화 규격이 합의되지 않아 3G로 음성 통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3G와 4G 하드웨어가 같이 있어 무게, 배터리, 가격에 이점도 없습니다. 성급한 한국인들은 또 다시 통신사들의 유료 베타 테스트가 되고 있습니다.
망은 수출할 수 없습니다. 수출 가능한 것은 스마트TV 하드웨어, 콘텐츠,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 그리고 플랫폼입니다. 안타깝게도 망에서는 아무런 부가가치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통신사의 수익을 보전해 주기 위해 스마트TV를 막고 모바일 인터넷 전화를 금지하고 카카오톡 같은 무료 모바일 메신저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통신사들이 망 이외의 부분에 적극 투자하지 않는 한 결국 아무런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통신사들이 잃어버린 이익에 연연한다면 결국 국가 경쟁력을 해치는 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망중립성은 한국의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입니다.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하는 미국의 업체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인터넷 기업들도 무료로 망을 사용해야 합니다. 통신사들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 위주의 사업 구조에 집착하여 국가 경쟁력을 해친다면 차라리 유선 전화, 초고속 인터넷, 무선 인터넷 등 물리망 부분을 통신사에서 분리해 다시 공기업화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물리망에 집착하는 통신사들 때문에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TV 접속 차단은 국가경쟁력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이를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통신사의 횡포로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공정위와 방통위는 각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통신사 자체의 자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인성 기자는 시스템 엔지니어이자 IT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일반인을 위해 한국 IT의 문제점을 지적한 <한국 IT 산업의 멸망>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