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3년 연임을 확정 지은 이석채(67) KT 회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의 논리는 두 가지다. 하나는 통신요금에 단말기 할부금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통신 요금에 월 2만~3만원씩의 단말기 할부금이 붙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돈을 많이 내게 됐다는 얘기다. 또 한 가지 요인은 단말기 값이 외국에 비해 비싸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단말기 출고가를 높게 잡아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며 통신 3사와 제조 3사에 4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 규모는 통신사 가운데서는 SK텔레콤이 202억원, 제조업체로는 삼성전자가 14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통신사와 제조업체는 출고가를 평균 23만원 부풀렸다.
요즘도 이런 상황은 그대로다. 삼성전자는 출고가 99만원인 갤럭시노트를 실제로는 통신사에 70만원 안팎에 공급한다. 이 70만원이 소비자가 지불하는 단말기 할부 원금이다. 그래서 24개월 할부를 하면 한 달에 3만원가량을 내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 6만원짜리 요금제로 24개월 약정을 하면 단말기 할부금 3만원의 대부분인 2만5000원 정도를 깎아주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약정을 통한 단말기 판매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출고가 논란이 없는 것은 약정 없이 단말기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단말기를 제값 주고 사서 낮은 요금만 내고 쓰거나, 아니면 약정을 통해 단말기 값까지 포함된 돈을 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통신사를 통해서만 단말기를 살 수 있다. 결국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업체가 손을 잡고 실제보다 높은 가격을 붙여놓고서는, 많이 할인해 준다고 소비자를 유혹하는 셈이다.
지난 3년간 KT를 이끌어온 이 회장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단말기 값 문제를 들고 나선 것은 결국 국내 최대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 회장과 삼성전자의 악연은 2년 전 애플의 아이폰을 들여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올 들어서는 스마트TV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KT와 삼성의 힘겨루기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닌, 앞으로의 주도권 다툼에 가깝다. 삼성은 네트워크를 활용한 다양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어 한다. 이 분야는 음성통화 수입이 줄어드는 KT가 차세대 먹거리로 눈독을 들이고 있다. 나이키의 경쟁업체는 닌텐도라는 말이 있다. 게임기를 붙잡은 사람은 운동하러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갈수록 전자와 통신 분야가 융합되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콘텐트 생태계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KT와 삼성의 ‘오월동주’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