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젊은 친구들한테 많이 물어봐 달라. KT의 미래를 짊어질 분들이다.” 지난 3월 19일. 이석채 KT 회장(67)이 본인의 임기 2기를 맞아 기자간담회장에서 5명의 젊은 CEO들을 소개했다. 김길연 엔써즈 대표(36), 김진식 유스트림 코리아 대표(43), 한재선 넥스알 대표(39), 변진 KT이노츠 대표(44), 이한대 싸이더스FNH 대표(35) 등이다. 이 회장은 이들이 KT의 새로운 미래를 도울 것이라 강조했다. 올레 경영 2기를 여는 자리에서 30~40대의 젊은 CEO들을 소개하는 이벤트를 시도한 데는 이 회장의 고민이 담겨 있다. 관례대로 라면 각 부문별 대표나 임원들이 경영 현황을 설명해야 했다. KT 관계자는 “전통적인 유무선 네트워크를 활용한 통신사업만으로는 성장이 한계에 부닥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이라 밝혔다. 이 회장 스스로도 “소녀시대가 무대 위에 있다면 물리적 재화지만, 그것이 스마트폰으로 유통되면 가상상품(Virtual Goods)이다. 책이 서점에 있지 않고 그 내용이 스마트 기기에서 흘러다니면 그게 가상재화”라며 앞으로 가상상품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KT가 지난 3년간 KT스카이라이프, IPTV 등 미디어사업을 키우고 엔써즈 등 관련 기업을 인수하면서 철저히 준비해왔다”고 덧붙였다. 유스트림은 영상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 기업이다. KT가 지난해 인수한 동영상 검색 전문업체 엔써즈는 자체 동영상 인식 기술을 적용한 검색 엔진·동영상 유통 플랫폼 등을 보유, 동영상 솔루션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다. 넥스알은 대용량 분산저장·처리기술 업체. KT이노츠는 KT의 소프트웨어 전문개발사다. 콘텐츠·애플리케이션이 신성장동력 실제 KT는 이석채 회장 체제 2기를 맞아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등 가상상품을 유통시켜 2015년까지 그룹 매출 4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이런 행보와 전략은 1기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 이석채 회장은 2009년 KT의 수장을 맡자,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조직 개편에 들어갔다. KT그룹의 오랜 숙원이었던 KT와 KTF의 합병을 밀어붙였다. 또한 공격적인 리더십으로 아이폰을 도입, 국내 모바일 시장을 음성통화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바꿔 놓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국내 통신시장에서 단말기와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이후 내부 구조조정과 함께 비씨카드, 금호렌터카 등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 연임 성공의 배경이 있다. 하지만 KT가 기본적으로 통신·네트워크 기반의 회사인 만큼 관련 산업의 성장 정체를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KT의 지난해 매출은 22조원으로 전년 대비 8.1%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조9570억원으로 4.6%나 줄어들었다. 무선 데이터와 IPTV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이 전년 대비 줄어드는 모양새를 보였다. 본업과는 무관한 부동산 매출만 5118억원으로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주가 역시 3만원대 초반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석채 회장이 KT 경영을 맡기 전인 2008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KT 안팎에선 이석채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게 나왔다. KT의 한 간부는 “2세대 서비스 강제 종료에 따른 소비자 불만, 주파수 정책 실패에 따른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 지연, MB정부 인사 낙하산 문제 등 이석채 회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강하다”면서 “임원 수를 늘리고 연봉을 올렸다”고 비판했다. KT는 지난 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특별근로감독을 받았다. 지난해 국회에서 KT 노동환경 악화가 지적되는 등 관련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회사 측에서 KT새노조(제2노조)위원장 등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피고소인이 제주도 자연경관 선정에 활용된 국제전화방식 투표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유포하고 회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이유다. 외부 출신 임원에 대한 평가에서도 직원들 간 이견이 여전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선전화 시장의 지속적인 침체와 매출 하락, 이동통신요금 인하 등 업계 전반의 상황이 좋지 않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두 번째 임기를 맞은 이석채 회장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다. 결국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석채 회장 1기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혁신과 체질 개선이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이 회장은 얼마 전 비상경영을 선포하기도 했다. KT와 삼성전자의 불편한 관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스마트TV 인터넷 접속 차단으로 촉발된 양사의 갈등은 결국 망 이용료에 대한 것이다. KT는 지난 2월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4일간 제한했다가 풀었다. KT는 삼성전자에 스마트TV의 망 사용대가를 요구했지만 삼성전자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스마트TV 제한 조치는 방송통신위원회 중재로 풀었지만 완전히 해결된 상태는 아니다. 이석채 회장은 아예 한발 더 나아가 “해외보다 단말기 가격이 비싸다”는 작심 발언도 했다. 간접적으로 SK텔레콤과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다. KT와 삼성전자 간 갈등설은 이석채 회장이 아이폰을 앞장서 도입하면서부터 불거져 나왔다. | |||||||||
LTE, 경쟁사 따라잡아야 이 회장에게 던져진 눈앞의 과제는 LTE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다. 2G 서비스 종료가 늦어지면서 KT의 LTE 네트워크는 경쟁사에 비해 뒤처져 있다. KT 측은 상반기 중으로 네트워크나 가입자 수 등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이석채 회장이 공언한 ‘콘텐츠·글로벌’을 중심으로 한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이석채 회장은 PCWW, B스카이B, 싱텔 등 해외 기업들을 언급했다. 이들은 통신사업으로 시작해 미디어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통신사였던 홍콩의 PCWW는 이제 IPTV 등 미디어사업에 주력하는 미디어 기업으로 변화했다. B스카이B는 위성방송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인프라와 콘텐츠가 융합된 미디어 회사가 됐다는 설명이다. 싱가포르 통신회사인 싱텔은 전체 매출 중 6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이석채 회장도 그동안 매출 다변화를 위해 클라우드 컴퓨팅, 광대역통합망, U시티 등 ‘탈통신’을 추진해왔다. 두 번째 임기를 맞아 이석채 회장은 아예 사업의 중심을 네트워크에서 콘텐츠와 앱 등을 통한 미디어유통업으로 옮기는 행보를 시작한 셈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콘텐츠와 서비스에 투자를 늘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빠르게 성공을 거두는 일 또한 쉽지 않다”면서 “당장은 IPTV와 스카이라이프를 통한 미디어 기업과, 비씨카드·금호렌터카 등 이미 인수한 기업을 통해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채 회장이 지난 3년간 보여준 카리스마 경영에 대한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 앞의 KT 간부는 “일부 혁신 성과도 분명히 있었지만, 조직 피로감과 내외부에 소위 ‘안티’ 세력도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좀 더 소통하는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했다. 정치적 변수도 이석채 회장에게는 고민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이후 KT 경영진에 변화가 불가피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이석채 회장의 임기가 불안해질 수 있다. 조직 안정과 성과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나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 내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