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개정 고시안 합의…SKB·LGU+에 여유공간 임대
“빌려 함께 쓰자.” “그럴 여유 없다.” 통신업체 간에 갈등을 빚어온 독점 통신망 지하관로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찾았다. 16일 방송통신위원회와 업계에 따르면, 케이티(KT)·에스케이(SK)브로드밴드·엘지유플러스(LGU+)는 지난 12일 만나 필수설비 개방 조건에 관해 각 사가 고수해오던 주장을 철회하고, 방통위가 마련한 개정 고시안에 합의했다. 케이티가 필요할 때 추가로 케이블을 깔 수 있도록 관로 공간 가운데 일부를 남겨두고, 나머지 공간은 다른 업체에 빌려주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새 고시는 이르면 다음달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방통위는 2009년 케이티의 케이티에프(KTF) 합병 때 통신관로 같은 설비 개방을 인가조건으로 부여하고, 케이티도 당시 지하관로를 다른 사업자에 임대해 경쟁에 기여하겠다고 밝혔지만 합병 이후 태도를 바꿨다. 케이티는 한국전기통신공사 시절부터 전화선·초고속인터넷용 지하관로를 구축해 사실상 이를 독점적으로 써왔다. 후발 사업자들은 케이티가 독점 공기업 시절 구축한 필수설비인 지하관로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사업자별로 지하관로를 건설하려면 새로 땅을 파야 하는데, 도심 지역의 경우 허가를 받기가 어렵고 빌려 쓸 때보다 비용도 30배 가까이 더 든다. 지하관로를 공동 사용하면 불필요한 업체별 중복투자를 피할 수 있어 통신요금 인하여력이 생기는 등 소비자 편익이 높아진다. 중앙전파관리소가 최근 1년간 케이티의 69개 지하관로에 대한 임대 여부를 현장점검한 결과, 케이티의 고의적인 제공 거부 등으로 이뤄지지 못한 게 24건(35%)에 이른다.
공기업 시절 구축된 지하관로를 개방해 통신업체들이 함께 쓰도록 하는 것은 기술 진보와 자원 재활용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정책 방향으로 여겨지고 있다. 통신기술 발달에 따라 지하관로의 구리선은 광케이블로 대체되고 있다. 지름 25~28㎜ 구리선이 100회선 처리용량인 데 비해 25㎜ 광케이블은 산술적으로 약 50배 많은 회선을 처리할 수 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 이상우 박사는 “통신선이 구리에서 광케이블로 대체가 활발히 이뤄지면 지하관로에 여유공간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케이티는 구리선을 광케이블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나온 구리선을 매각해 해마다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케이티 관계자는 “지난해 구리선 매각으로 1200억원을 벌어들였으며, 올해도 1500억어치를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