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구분이 없어졌다. 주말에도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가 도착한다."
지난 1년 '스마트워크'를 몸소 경험한 이상훈 KT G&E(글로벌-기업)부문 사장의 하소연이다.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스마트워크 활성화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 사장은 환영사를 제쳐놓고 자신의 솔직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스마트워크 도입 1년, 사장님은 피곤해
이 사장은 "담당 상무들이 이제 나를 직접 안 찾아오고 보고서 열에 여덟은 이메일로 '퉁'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면서 "예전엔 (사장이) 숙제 주고 검사하는 위치였는데 이젠 숙제 받고 검사 당하고 빨리 해결해 달라는 압박까지 당하는 위치로 변했다"고 밝혔다.
이메일을 보낸 뒤 24시간 내에 응답이 없으면 동의하는 걸로 간주해 문서 효력을 갖는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또 "중간 과정이 없어지고 직원들이 사장이나 경영진의 직접 답변을 원할 때 중간 간부들이 압력을 많이 받는다"고 밝혔다. 스마트워크 도입으로 업무 효율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상사가 받는 업무 압박은 더 커졌다는 얘기다.
KT는 시범 기간을 거쳐 지난해 4월 임직원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스마트워크를 본격 도입했다. 현재 매달 4000명 정도가 집과 가까운 스마트워킹센터나 재택근무를 이용하고 있고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집중도가 향상되었다는 의견이 72.2%에 이르는 등 직원들 만족도도 높게 나타났다. KT는 스마트워크로 줄어든 출퇴근 시간이 1인당 94분인 걸 감안하면 연간 26년을 절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퇴근해서도 '근무 상태' 유지"... 상사 눈치보기 여전
이석채 KT 회장 의지로 이뤄진 하향식 제도인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 이희진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최근 스마트워크에 참여한 KT 직원 16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시행한 결과 일과 생활의 균형이 허물어지는 부작용도 있었고 상사 눈치보기도 여전했다.
일과 생활 균형 측면에서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스마트워킹센터로 왔는데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긍정적 반응도 있었지만 "몸은 편한데 마음은 안 편하다"거나 "근무 시간이 늘어나 회사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개인 삶이 나아지진 않았다"는 부정적 응답도 있었다. 또 한 직원은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골방에 틀어 박혀서 혼자 해야 하는 느낌"도 털어놨다.
젊은 세대는 "(스마트워크가) 마음에 든다",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비교적 긍정적 답변이 많았지만 관리자에 대해선 "시간을 자율적으로 쓰는 것에 꺼림칙해 하는 듯"하다거나 "팀장은 자기 바운더리 안에 부하 직원을 두고 싶을 것"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에 "팀장이 놀 거라고 생각할 것 같아 일부러 오전 오후 메일을 보냈다"거나 "퇴근 후에도 아이패드로 스마트워크 프로그램 접속 상태를 수시로 체크했다"는 상사 '눈치보기'도 여전했다.
"직원 직접 봐야 통제한다는 건 구시대적 발상"
▲ KT가 26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연 스마트워크 활성화 심포지움 토론자들이 자유 토론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스마트워크 도입 이후에도 상사가 전화로 '어디야?' '뭐해?'라고 묻는다는 건 신뢰 기반이 약하다는 것"이라면서 스마트워크 도입 성공의 관건은 '신뢰'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조 강연을 맡은 독일 사회학자 마르쿠스 알베르스 역시 "감독자들이 팀원들을 직접 눈으로 봐야 감독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라면서 "사무실에서 일해도 뒤에서 지켜보지 않는 한 게임이나 딴 짓을 할 수 있고 스마트워킹을 해도 신뢰를 갖고 일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허물어지는 현상에 관해서도 "폴크스바겐 직원들이 주말, 여가 시간에도 계속 일하자 근무시간 외엔 회사 이메일 시스템을 차단한 것도 한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스마트워크 도입 이후 KT 직원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김홍진 KT 부사장은 "업무 강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는 건 스마트워크 때문이 아니라 집에서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현대 문화의 변화 탓이지 지난 20년 유럽 회사에서 스마트워크에 익숙한 나도 몸에 이상이 없다"면서 "KT를 음해하는 사람들의 얘기"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