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지배구조의 향배
정치권 외풍·규제 리스크 해소 초점 둬야
KT는 2002년 민영화됐다. 그 전에는 정부가 주인이었다. 통신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인 까닭에 정부가 직접 KT(옛 한국통신)를 소유하고 운영했다. 지난 5월 KT는 민영화 1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KT는 민영화 이후에도 민간기업인지 공기업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었다.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과 간섭이 여전한 까닭이 크다.
-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연임된 이석채 KT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올레 경영 2기’의 비전을 밝히고 있다.KT는 국내 기업 중에서 지배구조 모범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실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2011년 KT의 기업지배구조에 A+ 등급을 부여한 바 있고, 해외 유수 투자은행들도 KT의 지배구조에 높은 평가를 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 KT의 지배구조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KT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지배구조 모델을 취하고 있다.
구체적 장치로는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이사회의 절반이 넘는 사외이사 비율(73%), 사외이사의 독립성 및 권한 보장, CEO추천위원회 운영, 이사회의 CEO 경영성과 평가 등이 눈에 띈다. 이런 제도가 취지에 맞게 실질적으로 운영만 된다면 투명하고 균형 잡힌 지배구조로 손색이 없다.
지배구조 모범기업의 이면
KT는 민영화 이후 수많은 주주에게 지분이 골고루 분산됐다. 따라서 뚜렷한 대주주가 없다. 단일주주로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한 주주는 국민연금으로 2011년 말 기준 8.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자사주 6.8%, 우리사주조합 1.4% 정도가 눈에 띈다. 나머지 대부분 지분은 국내외 투자자들이 골고루 나눠 갖고 있다.
KT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기업으로도 손꼽힌다. 2011년 말 기준 외국인 지분율은 47.9%에 이른다. 다만 전기통신사업법에 의거해 외국인 지분은 49%를 넘지 못하게 돼 있다. KT는 주주들에 대한 배당도 많이 하는 편이다. 민영화 이후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 대한 현금배당액의 비율)은 평균 50%선을 유지해오고 있다. 배당성향이 높다는 것은 곧 주주들에게 이익을 아낌없이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주주 중시 경영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KT 주식을 선호하는 이유 중에는 높은 배당성향도 한몫 한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KT의 지배구조는 외관상으로 우수해 보이지만 허점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씁쓸한 대목이다. 물론 민영화된 공기업 상당수가 겪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게다가 통신산업이 규제산업이라는 특수성도 KT를 정부의 입김에 노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KT의 상황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낙하산 인사 논란이다. 이석채 회장조차 2009년 KT 사장으로 처음 선임될 때는 정권의 낙점을 받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게다가 다수의 친 MB 인사들이 줄줄이 KT 고위 경영진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낙하산 부대’라는 따가운 눈총을 사기도 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KT는 딱히 대주주가 없다 보니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낼 주인도 없는 셈이다. 또한 정부가 민영화된 공기업에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다수 주주들의 입장에서 볼 때 낙하산으로 내려온 인물이더라도 정부와의 ‘대화창구’ 역할을 잘 해낸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늘 주주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다. 이석채 회장은 첫 번째 임기 동안 KT의 체질개선과 성장동력 확보, 기업이미지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 덕에 주주들은 이 회장에게 연임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하지만 내년 초 정권이 바뀌면 그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예상도 나온다. KT 회장직이 새 정권의 논공행상용 전리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KT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만약 KT가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면 자연히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개편도 불가피하게 된다. KT 지주회사 전환설에는 논리적으로 그럴 듯한 근거들이 따라붙는다. 우선 KT가 통신과 비(非)통신 영역에 걸쳐 50여개 계열사를 거느릴 만큼 덩치가 비대해졌다는 점이다. 사업 내용이 서로 다른 계열사들이 통신서비스를 주축으로 하는 KT의 지배를 받다 보니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지주회사는 그룹 전체의 경영전략과 의사결정을 전담하고 나머지 자회사들은 각자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생긴다. 아울러 출자구조가 선명해지고 사업영역이 뚜렷이 구분되면서 투자자들의 호응도 얻을 수 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가능성 제기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KT는 자산이 굉장히 많은 기업이지만 통신산업 성장성이 정체되면서 주가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 KT그룹 전체의 자산가치가 주가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당장 KT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는 장애물이 적지 않다. 우선 50개에 달하는 계열사의 지분관계 정리와 조직 개편 및 인력 재배치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가 불허되고 있기 때문에 비씨카드를 거느린 KT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서는 법 개정도 필수적이다.
KT는 시중에 나도는 지주회사 전환 추진설에 대해 이미 조회공시를 통해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 상황이다. 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KT의 경영 효율화를 위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