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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 ‘해고의 전화벨 소리’

한겨레21 2015.12.20 18:21 조회 수 : 1278

내 옆자리 ‘해고의 전화벨 소리’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두 명의 정규직 노동자… 그들이 말하는,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을 이용한 대기업의 ‘쉬운 해고’


사무금융노조는 12월18일 서울 여의도 HMC투자증권 건물 앞에서 회사가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들을 방문판매부서로 전환배치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12월11일, HMC투자증권이 노조 간부 등을 방문판매부서에 배치한 것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김진수 기자

박근혜 정부가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겠다는 취지다. 정부의 말처럼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는 ‘철옹성’일까. 법으로는 그렇다. 근로기준법은 “경영상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없는 기업에서 쫓겨난 많은 노동자들이 유령처럼 존재한다.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 해고인 듯 아닌 듯한 말로 그들은 사표를 써야 했다. 2010년대 한국 기업은 구조조정의 칼을 정리해고로 휘두르지 않는다. 대기업에서도 어떻게 정규직 직원이 쉽게 해고되는지 한 기업의 노동자 두 명을 인터뷰해 글로 모았다. 실제 이야기다.


해고인 듯 아닌 듯한 말로

따르릉따르릉.

전화를 받으면 해고다. 주위를 둘러봤다. 전화벨은 시끄럽게 울리는데 다들 모른 척한다. 평상시처럼 전화를 당겨 받는 사람은 없다. 유달리 전화벨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벨 소리가 끊겼다.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벨 소리가 끊기자마자, 컴퓨터 화면의 아래 창이 깜빡거렸다. 회사 동료들과의 채팅창이다. 창을 클릭하니 한 동료가 ‘누가 전화를 받았대’라고 알려줬다. 휴. 한숨이 나온다.

전화를 받은 직원의 움직임을 따라 또 컴퓨터 창이 깜빡거린다. 임원실 앞에 앉은 동료가 키보드를 두드린다. ‘누가 방에 들어갔어.’ 컴퓨터는 깜빡이는데 마음은 먹먹했다. ‘왜 그 사람일까.’ 다른 채팅창도 깜빡댔지만 열어보기 싫었다.



한 달 동안 회사는 구조조정을 했다. 팀마다 사업이 끝나는 때가 다른데, 사업이 끝난 팀에는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이는 임원실에서 권고사직을 ‘요구’받았다. 어떤 직원은 새로 만드는 자회사로 옮길 것을 ‘권고’받았다.


임원실에 들어간 직원이 잠시 뒤 울음을 터뜨리며 나왔다. 점심을 함께 먹었던 동료였다. 2시간 전 함께 “오늘 연락이 돌고 있대”라며 정보를 교환했다. 입사한 뒤 잠시 정을 나누었던 직원들 대부분은 이렇게 회사를 떠났다.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게 내가 꿈꾸던 직장이었을까? 

 

2009년 회사는 구조조정을 했다. 경기도 좋지 않았고, 직장생활 중 한 번쯤 거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룹에서 30%를 감원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한 달 동안 회사는 구조조정을 했다. 팀마다 사업이 끝나는 때가 다른데, 사업이 끝난 팀에는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이는 임원실에서 권고사직을 ‘요구’받았다. 어떤 직원은 새로 만드는 자회사로 옮길 것을 ‘권고’받았다. 회사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 자회사까지 만들었다. 그룹 쪽에 인원을 줄인 성과를 보고해야 하니, 자회사를 만들어 사람을 내보냈다. 한 팀이 통째로 옮겨가기도 했다. 직원들은 일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한 달 동안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봤다. 3명이 모이면 이 가운데 1명이 나가는 셈이었다. 얘기를 하다보면 ‘누가 잘릴까’ 이런 궁금함이 아니라,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왠지 네가 대상자일 것 같지만, 너도 아니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에겐 건네는 위로조차 하찮았다. 스스로가 싫어졌다고 느껴질 때쯤, 직원들이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것을 느낄 때쯤 전화벨은 멈췄다.


누구도 전화벨을 피해갈 수 없었다


나간 동료들에게 물으니 근무평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경우가 더 많았다. ‘너는 누구와 일하는데 불화가 있다더라’ ‘결혼했으니 이제 곧 임신할 거 아니냐’, 임원은 덤덤하게 당신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객관적 기준은 없었다. 요즘 기업에서 써먹는다는 ‘저성과자 재교육 →해고’ 방식조차 없다.


어떤 직원은 화를 내며 환송회를 거부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고 환송회까지 했다. 어떤 팀장은 구조조정을 당한 직원에게 휴가를 줬고, 어떤 팀장은 자리를 뺏긴 직원에게 정해진 날짜까지 끝까지 나오라고도 했다. 팀장이든 팀원이든 자신의 방식으로 의자를 부둥켜안았다. 한 달 동안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니 다음날 출근할 뿐이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신기하게도 대부분 사원과 대리급 직원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도 끼어 있었다. 그해 모범사원상을 받은 사원도 전화벨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 회사의 사원과 대리급 직원은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에 견줘 연봉이 높은 편이었다. 매해 공채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그룹은 신입사원의 연봉을 같은 업종이 아닌 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맞췄다. 그렇다보니 전체적인 연봉은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보다 더 높아지게 됐다. 선배들은 신입사원을 보며 “얘네들을 왜 이렇게 많이 뽑았대”라고 말했다. 청년실업 해결에 동참한다는 그룹은 대규모로 신입사원을 뽑았고, 각 계열사별로 인원이 할당됐다. 물론 신입사원들은 입사할 때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신입사원들은 자산 순위 20위권(공정위 기준) 대기업 집단이라는 이름과 복지 혜택을 보고 선택했다. 가족들도 기뻐했다.


구조조정이 끝난 뒤 2010년 초에 회사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2009년 영업이익(96억원)은 전년(8억원)에 견줘 껑충 뛰었다. 사람을 내보낸 탓이었을까. 회사는 살아남은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나눠줬다. 성과급 총액의 절반은 직원이 나눠갖고, 나머지 절반은 임원진이 나눠갖는다는 소문도 돌았다. 성과급을 받아도 주변에 자랑할 수 없었다.


일은 더 많아졌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나가니 그 일까지 떠맡아야 했다. 구조조정을 한번 하니까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들도 입사를 망설이기 시작했다. 회사에 실망한 다른 동료는 부쩍 일에 대한 열의를 잃어버렸다. 회사는 인원을 줄여도 사업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 업무에 필요한 인원을 점점 최소로 맞췄다.


찬바람은 혹한으로 바뀌고


한순간에 사람들이 사라졌지만 회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갔다. 회사는 다시 직원을 뽑았다. 사업을 계속 하려니 사람이 필요해 비정규직을 많이 뽑았다. 대부분은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퇴근길 복잡한 지하철을 타면서 ‘그때 왜 구조조정을 했나’ 문득문득 생각이 들었다. 성과급은 그 뒤로도 매해 나왔다. 성과급을 받으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은 대출금을 갚으려면 회사에 남아야 했다.


2012년 11월 찬바람이 다시 불었다. 사무실 공기는 회사가 권고사직과 희망퇴직을 다시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에 또 스산해졌다. 소문이 도는 와중에 회사는 ‘OO 웨이’ 워크숍을 실시한다면서 한 호텔에 모이라고 했다. 이틀 일정이었다. 다른 계열사 직원들은 교육 기간 동안 호텔에서 하루 잠을 잤지만, 우리는 돈이 없어서 출퇴근을 했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지키는 방법과 팀 간 협력을 위한 방법 등 그룹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교육했다. 강사는 ‘OO 웨이’를 모든 직원들이 내재화하면 강력한 사람들의 따뜻한 집단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긴 교육 시간 중 ‘사람이 미래다’를 말할 때는 졸음도 가셨다. 직원들끼리 이 중요한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토론도 했다. 코스로 된 호텔 점심을 먹으며 따뜻하게 대우받는 기분이었다.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다음주에 출근하니 찬바람은 혹한으로 바뀌어 있었다. 회사는 희망퇴직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충격은 지난번보다 더 컸다. 직원들은 ‘설마 OO 웨이를 하면서 사람을 자르겠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번드르르한 가치를 믿는 건 순진했다. 그룹이 ‘OO 웨이’를 외부에 반포하려면 모든 계열사가 참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구조조정 전에 교육을 했다는 얘기가 내부에서 돌았다.


인원도 30%나 감원하지만 위로금은 ‘쥐꼬리’만 했다. 희망퇴직을 신청한 직원에게 7년차 이상은 5개월치, 그 이하는 3개월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준다고 했다. ‘다른 곳은 1년치, 2년치를 준다는데….’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팀당 줄여야 할 인원은 할당돼 있었다.


“쉽게 잘리는 게 공포스러웠다”


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 날은 끔찍했다. 희망퇴직으로 인원을 못 채운 팀은 직원을 권고사직시켰다. 어느 팀장은 자신의 팀에 할당된 인원이 너무 많아서 스스로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직원들은 임원실에서 또 울면서 나왔다. 한 동료는 전화를 받고는 “어떻게 하냐”며 임원실에 끌려들어갔다. 심장은 하루 종일 쿵쾅거렸다. 전화벨 소리에만 집중했다. 회사는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직원에게 ‘회사를 나가라’는 전자우편을 보내지 않는다. 내 책상 위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저항은 없었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였다. 회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아니더라도 매해 권고사직을 진행했다. 전화를 받으면 회사를 나가는 게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나갈 때 쳐다보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내 차례였으면 좋겠다는 심정도 들었다. 하지만 전화벨이 내 책상에서 울리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친구에게 이야기해도 이 불안감을 모른다. 사람을 자르지만 않으면 얼마나 회사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지 모른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곁의 동료가 구조조정된다는 것은 사무실을 공포스럽게 만든다. 내가 구조조정될 수 있는 확률이 1%이든 2%이든 3%이든, 그것 자체로 안정감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회사를 갈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다. 다른 부서에 있던 동료는 구조조정이 닥치기 전에 “한 번은 참지, 두 번은 못 참는다”며 회사를 옮겼다.


참다못해 언론사에 제보를 할까 고민도 했다. ‘어떻게 이처럼 심하게 직원을 자를 수 있냐’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을 회사가 강제할 수 있는지 법에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밖에 알리면 내가 잘리니까. 쉽게 잘리는 게 공포스러웠다.


회사를 퇴직하고 얼마 뒤 그룹은 회사를 다른 기업에 팔았다. 구조조정 때 100여 명이 나가 몸집이 줄어든 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는 중공업을 지향하는 그룹에 수익도 안 나고 지향점도 맞지 않는 ‘애물단지’ 같은 계열사였다. 회사를 여러 차례 팔려고 했고, 매각하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인수한 기업은 꽤 탄탄한 비슷한 업종의 회사라고 했다. 회사에 남은 동료에게 들으니 “매각해서 잘됐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큰 그룹에 끼어서 눈치를 보느니 그룹 우산에서 벗어나는 게 차라리 홀가분하다는 얘기다. 그동안 그룹에서 온 경영진은 임기 내에 성과를 거두고 승진하는 데 힘썼다. 장기적인 투자 대신 눈에 보이는 신제품을 출시하고 매출 규모만을 늘리려는 게 눈에 보였다. 경쟁력이 떨어져간다는 한탄은 무시됐다.


사람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남은 직원들의 분위기는 다시 기대에서 실망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회사가 매각됐지만 대부분의 경영진은 그대로 유임됐다고 한다. 영업직원의 역량이 중요한데도 이들을 회사 밖으로 몰았던 경영진이 그대로 남으니 한숨 소리가 나왔다. 복리후생도 약속과 달리 축소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고용을 2년 동안 보장한다는 약속은 잘 지켜질까.


텔레비전을 보니 다른 대기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삼성테크윈 등 한화그룹에 팔리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노동자들이 삼성과 한화 사이의 ‘빅딜’을 반대한다는 뉴스였다. 이미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서는 올해 수천 명이 대규모 파업 없이 일자리를 잃었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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